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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oana Nov 18. 2024

40만원의 사기, 그 뒤 얻은 교훈 1편

삼십대 중반, 여전히 한창 돈 거래를 많이 할 나이다. 가족 간에도 돈 거래를 해봤고(또는 다른 의미에서 지금도 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본 적도 있다. 돈 거래에 있어 굉장히 보수적으로 대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거래 자체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편은 아니다. 빌려주는 행위에서 인생의 진리(?)를 얻을 수 있으려면 역시 사람은 돈을 '잃어바야' 하는 것 같다. 이번 내용은 이전 내용의 연장선으로 이어진다.


그 해의 운을 다 빨아들이듯 재경관리사를 합격하고 엄마는 나에게 격려금이라며 50만원을 주셨다. 첫 달의 생활비 40만원과 격려금 50만원, 3월 달에 내가 가진 현금은 (무려!) 90만원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통장의 넉넉함에도 나는 무계획적인 지출보단 비상금 만들기에 돌입했다. 알바를 통해 생계를 마련하기만 하면 통장에는 50만원이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이후 4월부터는 두 개의 알바를 병행하며 착실히 살아갈 계획을 했다. 


호진(가명)이와 다시 어울린 건 그 무렵 부터였다. 이미 초중고를 같이 나온 사이였고 고등학교 때도 같은 반일 정도로 우린 비교적 괜찮은 우정을 지녀왔다. 같이 대전에 살며 연락을 주고 받던 중 몇 차례 술 잔을 기울이며 나는 일과 학업으로만 이어지던 지루한 일상을 조금씩 탈피해 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휴학을 한 상태인 것 같았다. 주로 노가다를 통해 돈을 벌고 있었고 그 돈으로 적당한 유흥과 함께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호진이는 노가다에서 친해진 형들과 클럽에도 자주 드나들며 종종 차를 렌트해 여자들을 태워본 본인의 경험담을 떠벌림 했다 가난한 대학생에 기껏해야 생활비 정도를 벌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친구의 재력(?)과 품위(?)가 부러웠다. 술자리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 세계를 체험해보기 위해 당장이라도 돈을 건네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쪼그라드는 잔고에 나는 늘 위축되었다. 룸을 잡기 위해 낸다는 10만원의 각출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말 앞에서 괜히 겸손해 졌다. 그저 친구의 경험담을 무용 삼아 대리 경험이나 하며 만족해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호진이가 드라이브를 하자며 나를 부추겼다. 나는 기분 전환 삼아 그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곧 이어 학교에는 번쩍이는 검은색 세단의 차량이 내 앞에 나타났다. 옆 좌석이었음에도 차가 있는 친구와 어디를 동행한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드라이브를 하던 중 차는 친구의 운전 미숙으로 브레이크를 밞아야 할 것이 엑셀을 밞아 그만 벽에 박고 말았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차의 앞 범퍼는 꽤나 찌그러져 있었다. 순간 일그러지는 호진이의 표정, 렌트를 한 차였기에 보험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수리 보증금(일종의 자기부담금)이 필요한 상태였다. 


호진이는 걱정하지 말라며 본인이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나를 안심 시켰다. 심각한 상황이지 않냐는 내 물음에 친구는 보증금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는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돈을 다 썼다며 미처 내야 할 방값을 못 낸 것에 대해 나에게 금전적 도움을 구했다. 노가다만 뛰면 돈은 금방 들어오게 되니 한 달만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아주 흔쾌히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친구는 나보다 큰 수입을 버는 친구였고 갑작스런 지출에 있어 재정에 잠깐 구멍이 난 거라고 생각해서 였다. 방값을 걱정하는 친구의 사정이 안쓰러워 나는 그 즉시 40만원을 계좌이체 하며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를 보냈다. 친구는 고맙다며 한 달 뒤에 꼭 갚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은 아름답게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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