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6학년, 우연한 계기로 인해서였다. 바로 담임 선생님의 태교 음악 때문. 당시 선생님의 (결혼 준비라는) 개인 일정상 우리는 자습시간에 자주 노출될 수 밖에 없었는데 선생님은 그 때 마다 우리에게 좋을 거라면서 태교 음악을 많이 틀어주셨다.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는 어느 덧 내가 가진 음악 세계에서 '클래식'이라는 분야를 취미로 들을 수 있게끔 해주는 귀중한 동기가 되었다.
선생님의 태교 음악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집에 가서 잠을 자려 할 때 늘 태교 음악을 틀어 놓은 채 눈을 감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멜로디는 마치 조그만 어린아이의 근심 걱정을 아늑한 일상의 흔적으로 바꿔주었고 꿈나라로 향하는 동안 포근한 뭉게구름은 여기 저기 내 살결에 맞닿았다.
당시에 사용했던 음악 사이트, '벅스뮤직'은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저작권 인식이 대두되기 전까진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나는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내가 발견(?)한 음악이 베토벤의 '비창',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슈베르트의 '자장가', 헨델의 '사계' 등이었다. 이 시기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던 시기와도 겹쳐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책도 많이 읽었을 때 였다.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는 클래식의 성지였던 오스트리아의 도시 '빈'이었다. 오죽하면 이 도시가 오스트리아의 수도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고 나아가서 이 나라가 과거에 그렇게 부흥했다는 사실도 뒤에 내가 역사를 좋아하고 나서야 알게 된 부분이었다. 그만큼 클래식은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 넓게 보면 내 유년기(라고 할 수 있는)의 끝자락에 위치한 기억의 토대로 자리 잡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는 동안 클래식은 암흑기를 맞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마다 들었던 음악이 어느 새 변방으로 취급 돼버린 것이다. 음악의 선택은 다양해졌고 이때의 팝은 활동적이었던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웨스트라이프, 브리트니 스피어스, 에미넴, 린킨파크, 옐로우 카드, 나카시마 미카, 아무로 나미에 등 셀 수 없이 많은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로 내 사춘기 감성을 자극시켰다. 이 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가서 소리를 질러야 했고(밤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많은 노래를 불렀다) 축구나 달리기를 하며 몸을 움직여야 기분이 나아졌다. 또 이 시기부터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귀에 아무것도 꼽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굴종해 집중할 때는 아무 소리도 듣지 않았다. 적막함을 느끼면 적막한 대로, 집중이 되지 않으면 그저 안 되는 대로 참아가며 혼자의 시간을 달랬다.
이후 클래식은 학창 시절을 벗어나 글을 쓰는 것을 취미로 가지게 되면서 다시금 재생되었다. 시를 쓰며 감정에 적실 때는 토닥이기도 해주고 일기에 기록하는 동안에는 마음 속 자아와 대화를 해주는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다양한 클래식 속 악기는 성인이 되면서 피아노 건반으로 정리 되었고 고전 음악의 추억은 현대의 뉴에이지로 탈바꿈 되었다. '감미로운', '비올 때 듣는', '외로운', '서정적인' 등의 수식어는 내가 뉴에이지 음악을 검색할 때 즐겨 쓰는 대표적인 문구가 되었다.
지금처럼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던 적이 있었던가? 취미가 정해지고 혼자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클래식은 그 어떤 음악보다 긴 재생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글을 쓸 때면 마음의 차분함이, 헤드셋을 귀에 대며 눈을 감으면 가볍게 미소를 짓던 그 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가 글을 쓰는 가장 최선의 컨디션이 된다. 여기에 외로움을 감내해야 했던 기억들을 되짚어가며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할 준비를 한다.
오늘도 무사히 에피소드 한 편을 마쳤다. 켜켜 묵은 먼지를 오늘은 조금 덜어낼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