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학창시절의 정서가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내가 2학년으로 올라갔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그 해 까지만 하고 명예퇴직(실제로는 2013년 8월에 퇴직)을 신청하신다고 하면서 우리 집은 이 때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명예퇴직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계기는 아버지가 앞으로 수령받게 될 퇴직금의 사용처가 이후 우리 집의 가족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 발단이다. 퇴직금의 액수는 자그마치 1억원 이었다. 아버지는 기존 집을 완전히 허물고 그 터에 새 집을 짓고 싶어했다. 반면 엄마는 리모델링 정도로 집의 외관을 바꾸고 남은 돈을 노년의 여유자금으로 남기고 싶어하길 원했다. 여기서부터가 모든 갈등의 씨앗이다.
두 분의 주장이 서로 이해 못할 만큼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20년 동안 살아왔던 낡은 집을 완전히 부수고 안락한 정원생활을 꿈꾸며 직장에 얽매이길 원치 않았다. 또 기존의 단촐했던 카센터를 유지 및 확장하며 무난한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야 남은 빚을 모두 청산했는데 그 돈을 고작 새집 하나 짓겠다고 전부 쓰이는데 큰 거부감을 느꼈다. 자식 새끼(무려 네 마리) 다 키워놓고 이제야 허리 좀 펴고 사나 싶었는데 남편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새집 타령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짓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결말은 반대로 끝나면서 아버지의 의견은 좀처럼 힘을 얻지 못했다. 거기서 분명 나는 아버지가 일종의 소외감을 느꼈을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항변을 해보자면 우리는 엄마 편을 들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돈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그 동안 남아있는 빚을 어떻게 갚아왔는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무려 20년 전에 진 주택대출 7,000만원을 겨우 갚아 이제 3,000만원으로 만들어놨다. 자식을 네 마리나 키우면서 빚을 갚는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겠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그 일을 해냈다. 첫째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계 보탬을 위해 곧장 생활전선으로 보내졌다. 누나 두 명은 도저히 시골에서 키울 여력이 못 돼 서울로 유학 아닌 유학을 시켜버렸다. 그렇게 나 한 명 남겨놓고 악착같이 살아간 끝에 갚아온 4,000만원이었다. 그러나 더 큰 시련은 여기서 엄마가 그만 갑상선 암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보험이 가입되었기에 망정이지 말 그대로 모든 게 망연자실해질 뻔 했었다. 갑상선 암을 일반암으로 간주되었던 시기에 들었기에 제법 큰 보험금이 엄마에게 수령되었고 조기 발견된 덕분에 엄마는 치료 후 남은 자금을 전액 빚을 상환하는데 보탰다. 그렇게 숨 가쁘게 살아온 엄마의 여생이었다. 그런데 빚이 사라지자마자 아버지가 새 집을 짓겠다고 한 거니 우리가 누구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아버지의 꿈이 아닌 엄마의 동의가 전적으로 수반되어야 했던 것이 당시 우리 남매의 주된 의견일치였다.
아버지가 암에 걸린 엄마를 조금이라도 간호해 주었다면 애초 이런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병문안 한 번 오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 부부싸움은 끝도 없이 계속 되었다. 엄마의 강인한 정신력은 내가 커가면서 결국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위력을 행사한 싸움은 내가 중재 했었는데 나 마저 기숙사에 들어가니 폭력에 노출된 부모님의 싸움은 늘 엄마의 최대이자 가장 무서운 걱정거리였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서로는(정확히 말하면 엄마에게는) 가족의 삶이 안정되기까지 어떻게든 울타리 안에 함께 있어보려 노력했다. 어쨌든 자식들이 모두 건장했고 자기의 앞가림을 다지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드디어 막내새끼인 나 마저 무난하게 대학교에 입학, 군대까지 마쳐 이제 엄마의 자유는 거의 손에 닿을 듯한 시점이었다.
이런 시기에 결국 사건이 터진 것이다. 엄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며 이제는 완전히 갈라서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