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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oana Dec 17. 2024

(가족 2편) 마지막 부부싸움, 그리고 엄마의 결심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은퇴선언, 그리고 기존 집을 부수고 말겠다는 협박은 엄마에게 있어 미래 이후의 계획이 그려지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었다. 


"누가 갚은 빚인데"


"누가 너를 농협 주유소(그곳에서 차량 수리 및 기름 배달) 정직원으로 만들어 놨는데"


"그 안에서 무급(장부정리)으로 일하며 네가 싼 똥을 치운 사람이 누군데.."


엄마에게 있어 이번만큼은 본인의 허락 없이 네 아빠의 행동을 멋대로 놔둘 수 없었다. 은퇴는 마음대로 하되 절대로 빚 만큼은 지고 싶지 않은 것이 당시 엄마의 진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언제고 평범한 날은 없었겠지만 유독 그 날 아버지의 취기는 떡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어진 주정을 가장한 싸움의 도는 어머니의 온 몸을 잔인하게 휘감은 채 여기저기 구겨지고 있더랬다. 


며칠 뒤 부모님의 싸움 소식을 듣고 엄마가 큰 누나네 집으로 피신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분노는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떠한 경우에도 아버지 편을 들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거친 화를 쏟아냈다. 우리 네 자매는 이미 엄마의 편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이제는 돌아가기 힘들 것 같다고 입을 떼며 '이혼' 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우리는 흔쾌히 엄마의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조심스럽게 얘기해 보건데, 아마 이 때 나는 무의식 중에 어느 정도 죄책감이 발현된 건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싸움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엄마가 아버지의 술 주정을 자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나 역시 이 시기부터는 조금씩 방관하는 자세로 내 삶을 꾸리기에만 바빠 있었다. 죄책감을 느꼈던 주된 이유는 적어도 부모님하고 나와의 관계가 누나들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물리적으로도 대전에 사는 내가 가까웠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독립한 자식 역시 나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까지 집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수 많은 물리적 행사의 폭력 시도를 내가 다 막아 왔었다. 고2 때 기숙사에 몇 개월 지낸 적은 있었지만 주말마다 집에 들리면 엄마의 안부를 늘 챙기곤 했다. 덕분에 엄마도 평일에는 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았다가 주말, 내가 오는 날에는 맞대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어쩌면 누나들도 가끔 놀러 올 때 집에는 항상 내가 있으니 어느 정도 든든함은 느꼈을지 모른다. 비록 막내였고 학생이었지만 그 시절 나는 떳떳할 만큼 중재자로서의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대학교 1학년이 되면서 나 마저 독립을 하게 되자, 엄마는 나를 보내며 약간의 씁씁함을 지어 보였다(지금도 그 표정이 어렴풋 기억난다). 그 때 나는 그 표정이 단순히 아들을 대학교에 보내는 게 아쉬워서 그랬던 게 아닌, 보호자가 떠나 이제 진짜 혼자가 돼버린 것 같다는 것으로 읽혔다. 이후 나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기 시작한 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자 부모님의 싸움에 관한 소식도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독립 기간은 그대로 군대까지 이어졌고 나는 부모님이 이제는 서로가 적당히 잘 맞추며 사는 것으로 오해했다. 제대 후 자격증 준비를 한다고 3개월을 집에서 보내며 또 여러 차례 부부싸움을 목격했다. 그래도 물리적 시도는 감소된 것 같아 안도를 했던 찰나, 불과 몇 개월 뒤 이런 사단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원래는 너를 졸업시킬 때 까지 몇 년만 더 참아보려 했는데.. 이건 도저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누나들에게 부모님의 부부싸움은 이미 아득한 과거의 얘기일지라도 나에게는 20대 초반까지 불과 몇 년전, 아니, 몇 달 전의 일들이었다. 엄마가 그 동안 상처를 감추며 힘들다는 내색없이 지냈다는 게 나로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3~4년이라는 묵묵한 기다림 끝에 이제서야 고백한다는 게 나는 잊고 있었던 중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많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방관만 일삼았던 내 모습에 염증을 느꼈고 몇 년간 엄마가 '참고 견뎌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많은 책임감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이혼 조정에 대해 깊은 관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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