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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Feb 03. 2023

‘쓰임’이 있는 사람

제5화. 영희 씨는 왜 나를 싫어하는가

“아악.”             



  

외마디 괴성과 함께 빨간 국물이 자작한 제육볶음은 영희 씨 손에서 아스라이 멀어졌다. 허리를 휘청이며 얼굴이 오만상 찌그러진 그녀 옆으로 8년 차 미선 씨가 재빠르게 받드를 낚아챈다. 퇴근 후 PT로 갈고닦은 데드리프트 실력을 뽐내던 그녀였건만, 매일같이 천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중노동에 맥없이 무너졌다. 배식카 앞으로 줄지어선 아이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 화답할 강도가 아님을 직감했다. “아씨, 또 도졌네. 배식만 마치고 통증주사 맞고 다시 와야 할 판 인디.” 짧은 탄식이 이어졌다.     


‘꼬시다.’

일말의 동정심도 품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마스크 속에 감춰진 입 꼬리를 비죽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급식실 메인 빌런이자 악의 근원이요,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첫 등장부터 영희 씨는 강렬했다. 2차 배식을 마치고 연두색 물통에 발포비타민을 타서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이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마스크를 벗고 보니 상상했던 모습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넙데데한 얼굴에 거뭇한 피부, 항시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는 눈꼬리,입술 선을 따라 정교하게 채워 넣은 버건디색 립스틱이 빈틈없었다. 몹시 더웠는지 척척 소매를 걷어 올려 우람한 팔뚝을 드러내 보였다. 목소리도 컸다. 꽥꽥 질러대는 고음은 조리실 벽을 뚫고 급식실로 퍼져 나갔다. 마흔여덟, 입말이 거친 여자였는데 조리원들 말이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 더 가야 하는 섬 태생이라고 했다.

“염병할. 지랄을 떠세요 떨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응답하라, 1994’에서 여주인공이 예뻤기 때문인가보다. 나 역시 결코 ‘결’이 고운 사람은 아니지만, 화통함으로 가장해 쏘아대는 욕지거리와 툭툭 나오는 대로 뱉고 보는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4개월 일하면서 무엇보다 견디기힘들었던 건 나를 향한 투명인간 취급과, 주 고객층(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저 여자랑 인사를 나눈 적은 있었던가. 11시 근무시간에 맞춰 10분 전에 출근하면 조리원들은 자신이 만든 오늘의 식단으로 스피드 하게 식사를 마쳤다. 하나 둘 일어나는 틈바구니에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할라치면 어찌 된 영문인지 매번 못 본체 하고 퇴식구로 향하는 그녀를 느꼈다. “안녕하세요!” 진상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얼씨구. 바로 눈앞에서 인사를 했지만, 대놓고 씹혔다. 민망함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처음엔 내가 저 여자한테 뭘 실수했나 싶었다. 제아무리 곱씹어 봐도 겹쳤던 아니 스쳤던 일화조차도 떠오르지않는다. 며칠 후 함께 배식을 하게 되던 날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가 다소 수다스럽다는 것, 또한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같은 조리원들, 심지어 어벤저스 어머님들과는 대화가 잘도 오고 갔다. 김장을 했냐는 둥, 주말에 캠핑을 갔다는 둥,


‘요것 봐라. 나만 보란 듯이 건너뛰네. 진짜 초딩이야, 뭐야. 어이가 없네.’

대놓고 따져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차피 떠날 사람한테 정 주기 싫은 거겠지. 지난번 방역 알바 하러 온 사람한테 돈 떼인 적 있나. 그래,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건 자유니까. 겨우 3시간인데 뭐, ‘여초회사’ 각오하고 들어온 거잖아.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영희 씨는 쉬이 삼켜지지 않는 가시였다. 눈만 스쳐도 파닥파닥 화딱질이 일었고, 어떤 날은 격분 캐 했으며, 그날의 밥맛까지 구리게 만들었다.     




“시금치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야? 이걸로 전 학년 다 줘야 한다고 해.”

영희 씨를 중심으로 내가 오른쪽, 소희 씨가 왼쪽에 서 있었다.   

   

“혜지 씨, 나물은 조금씩만 주세요. 애들 채소 다 남기거든.”

전하란다고 그걸 또 전했다.    




알바고 나발이고 병이 날 것 같았다. 하필이면 백발어머님에게 털어놓은 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지만.

“신경 쓰지 마. 제 원래 저래. 주방에서도 지가 대장인 줄 알아. 나도 제 때매 작년에 3번을 그만둘라 그랬잖아. 근데 알고 보면 또 나쁜 애는 아냐. 저런 스타일이 재미는 있거든.”

하며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아크릴 가름막 닦기에 집중했다.     


“아니죠, 어머님. 저건 사람 괴롭히는 거잖아요. 저는 지금 재미하나도 없어요.”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려. 내 한 번만 더 그러면 확 들이박아 버릴게. 또 그러면 말 혀.”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다음번에도 들이박을 생각은 영영 없다.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이거 뭐예요?”

“고등어잖아. 보면 몰라?”     


“저 이건 주지 마세요.”

“야 손으로 가리키지 마. 입으로만 말해.”     


“비엔나 더 주시면 안 돼요?”

“너 벌써 몇 개째야? 이제 없어, 오지 마!”     




아이들도 눈치가 빤했다. 영희 씨가 추가 배식대에 서는 날에는 좋아하는 반찬일지라도 한 번으로 족했다.      

어느 날인가 추가배식을 받기 위해 갔다가 그녀임을 확인하고 되돌아오는 1학년 아이를 붙잡고 일부러 물었다.

“가다가 왜 도로 오니? 급식선생님께 더 주세요 말씀드리면 되잖아.”

“저 선생님은 무서워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는 아이를 토닥이며 부러 더 큰소리로 말했다.

“어머 진짜? 뭐가 무서웠을까? 선생님이 따라가줄게.”     


5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녀와 나는 격렬히 눈 맞춤을 나누었다.

‘이게 미쳤나?’

‘미쳤다. 어쩔래?’   



            

겨울 방학을 하루 앞두고, 급식실 방역 아르바이트의 대장정을 마쳤다. 어차피 그만둘 거 미친 척 이유라도 물어볼걸. 차라리 욕이라도 푸지게 하고 나왔으면 속이 시원했을까. 결국 우린 말 한번 섞어보지 못했고, 풀고 자시고 할 끈덕지도 만들지 못했다. 애초에 내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 혹여나 피해가 갈까 염려하는 마음이 컸고, 어차피 단기 알바인데 무시하면 그만이지 하고 번번이 참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60만 원 벌기 너무 고되다. 결혼 전에 직장은 어떻게 다녔데. 스무 살에도, 서른 살에도 힘들었던 일은 마흔이 되어도 대수로이 넘어가지질 않는다. 오랜만에 헐겁고 다정한 미진에게 전활 걸어 그녀를 씹어 돌려야겠다. 앞에서는 말 못 하고, 뒤에서 잘근잘근 씹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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