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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Sep 25. 2023

생일을 축하해!

1년 만에 네게 편지를 쓴다.

네가 한글을 깨칠 무렵이었을 거야. 돌아오는 생일에 선물 대신 편지를 받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입을 쑥 내밀고는 말했었지.  

“편지 쓰는 거 너무 어려워요. ‘생일 축하해요’라는 말만 백 번 써서 칸을 채울 순 없는걸요.”     




편지 쓰기가 책무 같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단다.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과 부모님의 생신이 끔찍했어.궁극적인 이유는 아마도 내가 그들을 조금도 사랑하지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동생들처럼 방긋 웃으며 율동과 노래를 선보였다면 그들이 나를 사랑해 줬을까? 편지를 쓴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 집에서 장녀이니까. 버려졌던 나를 거두어준 것에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니. 하지만 그보다 내가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아이라는 것이 탄로 나면 ‘다시 버려질까 봐’였단다.    

  

용돈을 주고받을 형편이 못됐어. 당시 난 문방구에 파는 축하카드를 한번 사 보는 게 꿈이었지. 카드는 작았고, 이미 카드 자체만으로 눈부셨기에 마음에 없는 말을 오려다 붙일 필요가 없으니까. 가로줄이 촘촘히 그어진 궤지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힘을 주어가며 ‘생신을 축하드려요’라고 쓰고 나면 다시 막막해졌어. 넓은 편지지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내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노래가사였단다. 어버이날에는 ‘어머님은혜’를 생일날에는 ‘생일축하노래’ 가사를 두 줄에 한 문장씩 써 내렸다. 물론 적당히 큰 글씨체로 말이야.


이쯤 읽었을 때 너는 발칙한 나의 행동이 우스꽝스럽다 할지 모르겠구나. 왜 선물이 아닌 편지를 받고 싶냐는 너의 질문에 나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해 왔으니까.     

“편지는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거든. 단지 메시지만 전달하는 게 아냐. 그 안에 함께한 추억을 담고, 목소리를, 향기를 채워 보낸단다.”      

애석하게도 내겐 팍팍 눌러 붙일만한 스티커도, 너처럼 3단 케이크 그림으로 빈칸을 채우는 재주도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12년 전 오늘 너를 낳았어.

임신만 하면 짜잔! 하고 나타날 것 같은 모성애는 출산 이후로도 생기지 않더라. 나는 몹시 두려웠어. 너의 까만 눈동자 안에 내가 비칠 때마다 조바심을 느꼈지. 결국 나도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만 같았거든.      


돼지족을 삶아 먹어가며 유축을 시키고, 두 시간 간격으로 우는 너를 낚아채 젖을 물리고, 트림이 나올 때까지 등을 토닥이고, 잠투정이 심해 포대기를 한 채 같이 엎드려 잤던 것이 나의 모성애일까.     



 

“엄마, 가을 하늘이 유달리 더 파란색인 이유 알아요?”

열 두 계절을 함께 건너며 해가 뜨고, 달라진 달의 변화를 관찰하는 동안 너와 나는 더욱더 돈독해졌지. 아니 나는 애초에 너와 나를 떨어뜨려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우리는 그날 견딜 수 없이 짙고 푸른 가을하늘을 망연히 바라보았지.    

  

웅아 사랑한다.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게 너를 사랑한단다.우리가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오늘은 이 눈부신 가을날을 찬미하자꾸나.      

12번째 생일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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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마셔요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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