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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Dec 30. 2022

2022년, 다정했던 나의 한 해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았다.

2023년 다이어리를 샀다.      



          

매해 그래왔듯이 12월부터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전역을 한 달 앞둔 말년병장 다이어리를 마저 채울 것이냐, 이제 막 포장을 벗겨 각이 제대로 잡힌 신병다이어리를 시작할 것이냐.     

2022년, 다정했던 나의 한 해.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았다.  



   





1월,

남편이 한 달을 통으로 쉬었다. 6년 다닌 직장을 마무리하며 잠시 숨 고르기를 선택했다. 덕분에 아이들도 학원을 쉬고,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차갑게 살을 에는 공기를 뚫고 눈썰매를 탔고, 얼음낚시를 했다. 아이들은 모른다. 제 엄마가 겨울만 되면 쩍쩍 갈라지는 발바닥에 기모양말과, 파스형 핫 팩을 장전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낭만이라는 불꽃을 품고 사시는 친정엄마를 위해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포항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박달대게를 먹고, 경주 대릉원을 산책했다. 고분 뒤편에 또 고분이 숨바꼭질하듯 나왔다. 차가운 바람소리와 황량한 풍경이 내 엄마와 닮아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운영하는 5060 카페에 손자들과 찍은 겨울바다 사진으로 도배했다. 헛살았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걸 왜 이제야 함께 했을 고.     




2월,

오롯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두 달은 좀 길다. 코로나에 겨울방학까지. 집안에서 각자의 일상을 침범하다 보니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함께 하면서도 독립된 공간이 집이다. 존중의 거리가 필요하다.
 
 2월에는 1년 치 걱정을 한데 모아서 했던 것 같다. 남편의 새 직장, 영어 학원을 옮긴 큰아이의 적응, 작은아이의 새로운 언어치료사 선생님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찬 한 달이었다. 특별히 유아 교육서만 찾아 읽은 기록을 보니 확실히 마음이 조급했나 보다. 지나 보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을.     




3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부모라면 누구나 3월은 어수선하다. 게다가 코로나 3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새로 배정된 학급에 들어온 아이들은 코와 입을 새하얀 마스크 속에 감추고, 눈만 끔뻑 인 채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임원선거까지 마쳤다.     

옷깃만 스쳐도 밀접 접촉자로 PCR검사를 받았던 지난해와는 사뭇 달라졌다.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띠링~’하고 도착하는 재난안전문자에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다만 주말 저녁마다 아이들을 하나씩 붙잡아 면봉으로 콧구멍을 쑤셔댔던 일은 돌이켜 보아도 끔찍하다.    



 





4월,

드디어 우리 집에도 그분이 오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미각과 후각이 동시에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터져 엘리베이터를 주황색으로 물들인 날에도 머리로는 역한데 코가 무던히 버텨주었다. 냉동고등어를 굽는데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입맛이 없는 날 위해 언니가 보내준 열무김치의 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코와 혀에 얇은 반창고를 붙인 것 같았다.   



  

5월,

언제 봄이 찾아온 걸까? 살짝 열린 문틈으로 새어 나온 봄바람에 다시 부지런을 떨어보았다. 바야흐로 행사의 계절이 아닌가. 100주년 어린이날을 맞아 두 달 전부터 어렵사리 예약해 둔 캠핑장을 찾았다. 솜사탕도 만들고, 메기를 잡고, 보물 찾기도 했다.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고맙다.

앞으로도 사랑 듬뿍 채워 줄 테니 티 없이 크거라.  

    

어버이날. 며느리밥상 받는 게 여태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경양식집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김치가 없어 더는 못 먹겠다고 밍밍한 수프만 싹싹 비우고 점잖게 앉아계셨다. 가끔 와서 빼꼼 인사만 하고 제 볼일 보러 사라지는 손자들 뭐 그리 예쁘다고, 당신 입에도 안  대는 돈가스를 고집하신 건지.   

  

‘희생’을 당연시했던 시부모님은 내부모와 견주어진다. 촌구석 살림에 가족들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고, 내 자식은 나처럼 고생해선 안 된다는 일념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진 일생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내 부모에 대한 원망은 사십이 되어도 지울 수 없다.      




6월,

좀처럼 실감 나지 않던 나이 마흔.

어깨에 둘러맨 책임을 잠시 내려놓고 20년 지기 친구와 2박 3일 부산여행을 떠났다. 여름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데 뜨겁게 불타올랐던 우리의 10대, 20대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자주 만나야 베프고, 문자를 씹어서도 안 되며 미주알고주알 마음속 이야기를 다 꺼내놓아야만 우정이라 여겼던 적 이 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우정의 참 의미를 실감했다. 서로 있는 곳에서 잘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것. 어느새 무심한 듯 덤덤히 철 들어가나 보다.

미진아, 내 친구야, 평생 함께 늙어가자.     



사진 출처 Pixabay




7월,

이곳에 이사 와서 가장 덕을 많이 본 것을 꼽으라면 ‘도서관’이라 주저 없이 답한다. 겨울에는 더운 바람을 쐬러, 여름에는 바퀴 달린 수레에 아이들 텀블러며, 물티슈, 예비 마스크, 둘째의 곰 젤리까지 부지런히 챙겨 도서관에 입성한다. 땀에 절어 허겁지겁 찬 물을 들이켜고 나면 훅 불어 닥치는 에어컨 바람이 반갑다. 오늘 하루도 야무지게 채워지는 이 기분을 언제까지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8월,

남편회사 여름휴가는 10년째 8월 첫째 주 고정이다. 덕분에 ‘장마’도 우리의 휴가에 늘 함께하는 중이다. 이제는 안 따라오면 섭섭할지도 모르겠다는 너스레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은 타프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에 깔깔 대며 손과 발을 갖다 댔다. 물놀이 후 챙겨간 압력밥솥에 뜨끈한 백숙을 호호 불어먹는 재미는 안 해본 사람은 말을 마시라. 집에서 느낄 새 없었던 서로 간의 애틋한 감정이 노곤해질 만큼 행복했다.    



 

9월,

‘코로나19 방역활동 인력 채용공고’가 났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2시까지, 급식실 식탁과 가림막을 소독하는 게 전반적인 업무였다. 게다가 청소 이후 점심까지 제공되었다. 이건 꿀 알바잖아. 서둘러 도보가 가능한 학교는 죄다 지원했고, 운 좋게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집에선 내 얼굴보다 더 많이 보는 애들인데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낯설고, 어쩐지 반갑다.

결혼 후 처음 번 돈으로 엄마의 겨울 외투를 사드렸다.



    





10월,

신록으로 충만했던 숲에 무지개보다 더 고운 물감이 흩뿌려졌다. 3년 만에 아이들은 소풍을 떠났고, 주 전공인 김밥을 두 번이나 쌌다. 일주일 차로 붙은 아이들의 생일을 맞아 원주로 단양으로 캠핑을 떠났고, 큰아이와 첫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5km 완주 메달을 함께 목에 걸었다.  

   

안팎으로 떠들썩한 행사들이 순조롭게 끝나는가 했는데, 10월의 마지막 주에는 수많은 죽음 앞에서 가슴이 미어졌다.     




11월,

달력 넘기기가 무섭다. 어느새 지인들을 만나면 너도 나도 안부가 “김장은 했어?”라고 물었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때는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는데, 3년 전부터 시골집 김장행사에 맏며느리로 참여하고 있다. 식구가 많아 배추를 치대 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주로 김치가 담긴 통을 최종 검수했다. 테두리에 묻은 양념을 닦아내고, 위에 비닐을 하나 덮는 것, 김치 통이 섞이지 않게 구별해 두는 일을 도맡았다. 가마솥에 수육 8근도 너끈히 삶아내는 내가 기특하다.



    

12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단연코 올 한 해 통틀어 가장 뜻깊은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글을 쓴다는 건 모국어의 참맛을 맛보는 특별한 기회’라고 했다. 아직은 나만 보는 일기장에 불가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제 2022년을 담담히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많은 해 중에 하나이지만 내 삶에 의미 있는 기록을 함께 해 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연말만 되면 항상 짙은 아쉬움이 그득했는데, 올해는 다르다.

아쉬움이 1도 없다면 거짓말일 테고 후회 없이 행복했다.


다정했던 나의 한 해.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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