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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Jan 13. 2023

'쓰임'이 있는 사람

제2화.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배식대 너머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단정하게 흰 유니폼을 맞춰 입고 일제히 젊은 여자를 향해 레이저를 쏘아대는 이들은 나의 새 동료들이다. 노인일자리 지원 사업을 통해 들어온 6명의 할머니.

소개가 무섭게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몇 살 이유?”, “애가 이 학교 다녀?”, “집이 이 근천가?” 이후 그들로부터 ‘애기엄마’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큰아이가 4학년, 둘째가 7살인데 애기엄마라니. 다시 새댁이가 된 듯 기분이 달떴다.     




11시, 드디어 1부 급식이 시작되었다. 교직원과 학생을 포함 천 명이 조금 못 되는 인원이 390석에서 식사를 하려면 3부에 걸쳐 급식이 돌아야 한다. 병설유치원을 시작으로 1, 2학년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누차 설명해 둔 터라 크게 요동은 없을 거라 예상했으나, 하얀 모자에 수술장갑, 앞치마를 맨 엄마가 생경한 건지 둘째는 괜히 와서 쿡 찔러본다.

“그런데 엄마, 우리 엄마 맞아요?”




      





#1. 반장님은 임영웅 팬이다.


일흔, 여섯 명의 멤버 중  가장 어린 그러나 꼬부랑 할머니다. 음악방송 문자 투표를  내 평생에 하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다는 이야기는 다섯 번쯤 들었다. 덕질에 나이가 어딨냐고 응수해 드렸다. 쉬고 온 다음 날은 삼시세끼 영감 밥 해 먹인 이야기만 하다가도, 영웅이 이름만 나오면 깜장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자신의 요실금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11시부터 2시까지. 겨우 3시간 근무를 하며 5번 화장실을 다녀왔다.

“애기 엄마 내 나이 돼봐, 기침만 해도 싼다니깐.”

너스레가 유난히 슬펐다.



#2. 체력왕은 단연코 30년 수영과 에어로빅으로 다진 백발어머님이다.


반장님과 함께 코로나 이전부터 급식실에서 근무하신 이른바 오픈멤버다. 그 연세에 허리가 하도 꼿꼿하고 걸음걸이가 발라서 나이가 무색했는데 일 잘하고도 사람을 이끌지는 못했다. 그나마 엉덩이 붙이는 식사시간을 '후다닥' 5분으로 마감해 버리고, 혼자 일어나 걸레를 빨아 들고 대기했다. 속도에 맞춰 대충 삼킨 그날은 밥덩어리가 명치 언저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때문에 허리를 숙여 아크릴판을 닦을 때마다 생목이 올랐다.

'빌어먹을, 저놈의 할망구 때문에 밥도 내 맘대로 못 먹네'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입 뒀다가 어디 쓰려고 매번 고개로 지시를 내렸다. 좌로 머리를 흔들면 왼쪽을 닦아라, 우로 흔들면 오른쪽을 닦아라, 밑에서 위로 치켜들면 안 치우고 뭐 하냐는 꾸짖음이 느껴졌다. 사회에 계급과 질서가 강요되듯 작은 급식실에서도 분명 상급자의 명령어가 존재했다.     




#3. 목소리가 큰 ‘나복자’ 어머님은 이름처럼 박복한 인생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 일본으로 입양 보내져 진짜 내 부모가 누군지 여태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중매로 국밥집 장남을 만나 평생을 홀시어머니 밑에 구박받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땐 큰 덩치에 맞지 않게 아이처럼 눈물을 훔쳤다. 귀가 몹시 어두워 반장님과 체력왕 어머님은 복장이 터진다고 이따금 역정을 냈다. 계약일이 종료되던 날, 복자어머님이 가만히 다가오셨다.

“나도 관둬, 저놈에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편네들 때문에.”     




사진 출처 :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4. “김장은 했어?” 영애 어머님은 탤런트 이영애와 이름이 같다.


고장 난 형광등처럼 수시로 '깜빡깜빡',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아침인사는 '김장을 하였느냐'가 고정멘트였다. 연배가 비슷하니 동료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 인정 많고, 마음이 고우셔서 특히 주방 조리원들이 영애 어머님을 좋아했다.




#5. 안경 어머님은 똑똑 박사다.


혈압약, 고지혈증 약, 당뇨약 나머지는 생각도 안 난다. 돋보기안경 너머 매일같이 약을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었다. 당신 건강이 종합병원이기에 인근병원은 모조리 꿰뚫고, 동네 3개 있는 약국 중 어디가 제일 잘 약발이 좋은지까지 읉었다. 한 번은 김장을 다녀와 몸살처럼 늘어져 있었는데, "애기엄마, 이따 퇴근길에 원탕 하나 사서 들어가. 초기감기에 딱이야." 약장수가 따로 없다. 타이밍 덕분인지, 마음을 잘 다스린 건지 약발은 기가 막혔다.




#6. 순화어머님은 살가운 사람이다.


한시도 입이 쉬질 않았다. 조선족이라고 몇몇 멤버들이 텃세해도 들은 체 만 체, 일흔한 살 순화 씨야 말로 '명랑소녀'다. 아무도 궁금해 않는 내 이름을 물어 '애기엄마'가 아닌, '혜지야'라고 다정히 불러주셨다. 지독히 춥고, 팍팍한 살림에 살기 위해 내려왔다는 그녀는 한때 잘 나가던 여배우집에서 10년간 입주도우미로 일했다. 어느 날인가 더럽게 짠 ‘안동 간고등어’를 하나씩 나눠주셨는데 알고 보니 ‘홍보관’에서 이 천 원 주고 산 거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 돈 내고 날름 휴지랑 치약만 받아가면 욕 한다고 이따금 자식들이 찔러준 용돈으로 안구안마기와 세라믹 온열전기장판을 사 온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손자뻘 되는 젊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잔치를 열어주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넘어가는 거지. 그래도 자식보다 살갑잖아.”  

머리를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았다. 아들 둘 훌륭하게 키워서 장가보내고, 매달 100만 원씩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온다고 멤버들의 질투를 사던 기억이 겹쳤다. 그날 그 말씀이 여태 잊히지 않는다. 쓸쓸함에 가슴이 아리도록 시렸다.








할머니들은 3명씩 2조로 편성되었다. 매일 출근하는 나와 다르게 격일근무로 10일을 채우면 30만 원에 수당 3만 원까지 받아갔다. 호화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없었다. 그녀들의 대화는 주로 자식이야기, 남편이야기, 결국 돌아보면 다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이따금 아릿한 회한과 추억을 소환해 넋두리가 터지는 날엔 흑백티브이로 인생의 뒤안길을 보는 것만 같았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일찍 철들 수밖에 없던 시대를 살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도 우리였던 시절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할머니도 없다. 그녀들 역시 거무튀튀한 얼굴의 주름을 상상하진 못했을 테니까. 진분홍빛 동백꽃 같았던 곱고 어여쁜 모습은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지만 같은 여인으로서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겨울비가 내린다. 며칠째 미세먼지가 심하더니, 물줄기에 뿌연 하늘이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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