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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05. 2024

2장 | 감정이 지나간 자리

‘왜’가 아닌 ‘어떻게’ 사는가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네”였다. 그러나 “죽고 싶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모순적인 답을 한 모양새지만, 나는 이 두 질문이 절대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왜 살아야 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주변에서는 “부모님과 친구들 이 슬퍼할 거야.” 또는 “아직은 젊으니 뭐든 할 수 있어.”와 같은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위로의 말들은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나는 이미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고 생각했고, ‘나는 또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더욱 증폭될 뿐이었다. 모든 것에 지쳐버린 나는 이기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긍정적인 말조차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다. ‘잘’ 살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많이 웃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잘 사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 세상은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돈이 많으면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로또에 당첨되어 갑자기 큰돈이 생길 확률은 희박할뿐더러, 내가 밤낮없이 일한다 한들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애초에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해지리라는 보장도 없는 헛된 생각이었다. 나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불명확했다. 그런 상황에서 행복을 바란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오며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을 찾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완벽한 삶도 아니고, 가진 게 없다고 해서 불완전한 삶도 아니다.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해서, 다른 꿈이 생길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고민함으로써 미래를 살아가는 데에 큰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고,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한 회피책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미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고민은 깊게 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당장의 내가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또한 하나의 계획이 될 수도 있다. 울적한 나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등이 그 예시이다. 지금의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다음, 다음날의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먼 미래의 나를 그리는 날이 온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갈 수 있게 된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발견하며, 내가 원하는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리하면 언젠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화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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