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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04. 2024

2장 | 감정이 지나간 자리

 슬픔을 공부하고 있어, 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일한 휴식은 ‘잠’이었다. 처음에는 알코올에 의존해 깊은 잠을 청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술 없이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고, 불면은 습관처럼 따라왔다. 수면이 사라지니 심신은 약해지고, 우울과 자책만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주변인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나와는 먼 얘기라 여겨졌던 수식어가 내 이름 뒤에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병원의 처방은 나와 맞지 않았다. 약이 너무 강해 손이 떨리기도 했으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한 달에 10kg이 빠져 버리기도 했다. 그 시기는 너무나 지옥 같았고, 병원조차 내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취침 전 약을 먹고 잠이 오길 기다리는데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내 안의 거대한 충동은 마음도, 머리도 막을 수 없이 커져갔다. 분명 제 발로 응급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가 이걸 다 먹어버려서요.”라는 말을 끝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뜨니 굳게 닫힌 입원실 안에 내가 있었다. 한 대학병원 정신병동의 입원실이었다.


입원 생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7살 어린아이처럼 “집에 보내주세요. “라는 말을 수없이 달고 지냈고, 병원에서 나가게만 해주면 "잘 살아보겠다."라고 했다가도 ”나가면 콱 죽어버릴 거야.” 같은 말로 부모님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퇴원할 때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에 대한 내용은 퇴원 후 개인 SNS에 올렸던 글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17일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공백이라고 하기엔 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인해 자해,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심지어 공황장애 증상까지 겪었습니다. 결국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외래 진료를 받았지만, 독한 약 때문에 체중만 줄어들었고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시작은 2년 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예체능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조금씩 재능을 보였고, 관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정사와 스스로의 확신 부족으로 그 꿈을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스무 살 때부터 연기학원에 들어가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입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저보다 재능 있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결국 수시만 보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을 했던 시간이어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입시를 포기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찾아왔고,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자책하며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울 속에서 혼자 긴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우울증으로 인해 폭식증까지 앓고 있었고, 지금과는 체중이 약 25kg 차이가 났습니다. 저 자신을 더더욱 숨기기 바빴습니다.

약 1년 정도의 긴 싸움 끝에 다시 세상에 나왔습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친구들과 술도 한잔 하고, 천천히 다이어트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뜨겁게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며, 그때의 행복은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정과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한 아픔, 술과 담배, 그리고 정신과 약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체중 감소와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고,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여기서 슬기를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친구, 슬기. 제가 참 아프게 했습니다. 언니처럼, 엄마처럼 늘 옆에 있어주고 보살펴줬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은 감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늘 미안하다고 하면 “나한테 미안하면 이제 그러지 마”라고 해주던 친구. 끝끝내 바닥을 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제 곁에 있어준 슬기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입원했을 때 슬기가 써준 편지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슬픔을 공부하는 책을 읽고 있어. 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말은 제가 아팠던 시간 동안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넌 이겨낼 수 있어” 같은 위로의 말보다, 저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는 숨기고 감추며 혼자 아프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병원을 언제까지 다니고,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두려워하기보다는 제 감정을 드러내고 혼자 앓지 않기로 약속하는 의미를 담아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스스로 싸워야 할 마음의 아픔들이 있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더 아프게 하지 않고 다독이며 좋은 일들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지만, 그냥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말할 곳이 없겠나” 하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슬픔을 공부하는 책을 읽고 있어. 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말은 감히 충격적이었다. 나조차도 나의 슬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종종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고 난해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위해 슬픔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이는 슬기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과 지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아픔을 함께하려는 그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지 않은가.


나는 나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기로 했다. SNS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솔직하게 담아낸 나의 아픈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슬픔은 단순히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삶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이 또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픔을 통과하며 더욱 성장하고 있었다. 슬픔은 꾸준히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아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마주할 것을 이 순간에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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