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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02. 2024

1장 | 실패하는 삶에 대한 애도

무대에 서고 싶었을 뿐인데

19살, 상업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당연하게도 취업을 했다. 전공이었던 회계에는 큰 흥미가 없었기에 어느 한 종합병원의 외래보조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꿈을 좇기 위해 약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퇴사를 한 후 어쩐지 어수룩한 모습으로 무작정 연기학원을 찾아갔다. 학원 비는 한 달에 65만 원으로, 어렵게 모아둔 400만원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걱정보다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나는, 어느새 연극영화과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꽤나 행복했다. 언제나 열정이 넘쳤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은 입시가 시작되자 불행으로 바뀌었다. 준비한 것을 시험장에서 쏟아낼 생각에 설레던 마음은 압박감으로 변했고, 그 긴장감 속에서 나는 자주 실수를 범했다. 어떤 날은 아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시작조차 못하고 시험을 마치기도 했다. 불합격 통보가 여러 번 이어지자 내 마음은 열정보다 무력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과는 무참히 ‘실패’였 다. 단 하나의 대학교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거나 술을 진탕 마신다거나 극단적으로 놀러 다니는 행동들로 과거에 대한 후회를 잊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순간의 도피처가 되어 줄 뿐, 결국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실패의 낙인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 년여 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말았다.


약 삼 년 후, 나는 연극영화과 입시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서울의 한 전문대학교에 합격했지만, 곧바로 퇴학을 결심해야 했다. 나의 꿈은 단순히 ‘대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 년의 공백 동안 직장인 연극 모임에서 취미로 연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무대에 서는 기쁨이 대학에 합격한 것보다 훨씬 더 컸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오직 ‘무대’에 서고 싶었을 뿐이었다. 퇴학을 결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는 어쩐지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우울은 끝없이 번져갔고, 어느새 나는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명확한 결말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두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패를 이겨내는 방법이나 경험을 공유받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이 이야기를 더 이상 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 날 문득 실패에도 애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로 인한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더 이상 피하거나 숨지 않기로 했다. 비록 그 순간들이 너무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애도를 마친 후에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주저하지 말고, 마음속 슬픔을 직면했으면 한다. 아픔을 느끼고 그 감정을 충분히 소화한 후에는 진정한 치유가 시작될 것이다. 언젠가는 나처럼 그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이따금씩 웃음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혹 과거의 실패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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