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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03. 2024

1장 | 실패하는 삶에 대한 애도

꿈 vs 현실

첫 번째 입시와 두 번째 입시 사이에, 나는 삼 년의 공백 기간을 경험했다. 그중 무기력하게 보낸 일 년을 제외하고, 남은 이 년간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휴대폰 판매 매장에서의 근무였다. 이 직업은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매장에 제 발로 찾아오는 고객도 있었지만, 스스로 고객을 유치하고 판매하는 과정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전문지식이 없으면 판매할 수 없었고, 고객과의 소통을 유연하게 하지 못하면 절대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기를 통해 내가 아닌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것처럼, 판매라는 업무 또한 나 자신을 깨뜨리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야 가능한 일이었다. 고객과의 소통에서 나는 여러 역할을 자처했다. 때로는 친절한 상담자로, 때로는 문제 해결사로, 또 때로는 열정적인 판매원으로 나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고객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주는 것은 마치 무대 위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비슷했다. 나 자신을 넘어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판매는 단순한 거래가 아닌, 결말을 알 수 없는 연극과도 같았다.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게 해 준 나의 두 번째 직장생활은 고작 6개월이었다. 퇴사를 한 이유는 다양했다. 근무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던 점, 고객과 회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중압감, 다른 직원과의 갈등 등의 이유였다. 이러한 어려움은 내가 연기했던 페르소나의 한계에 부딪혀 피부로 와닿았다. 내 마음과 겉모습은 충돌하며 진짜 나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직장이라는 무대에서의 실수는 계속 마음에 남아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고, 나를 더 주저하게 했다.


나는 실패의 순간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연극배우의 꿈마저 실패했는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실패했으니, 이제 어쩌지? “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두려움을 넘어 공포의 감정이 느껴졌다. 23살의 나는 실패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부터 내 삶을 대하는 태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우울과 불안은 나의 동료이자 은신처가 되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를 감추고,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으려 애썼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약 5년간 꾸준히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와 맞는 병원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고, 약을 조절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기도 했다. 가끔은 나 자신을 ‘유리멘탈‘이라 칭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한지, 왜 다른 사람들은 잘 해내는데 나는 이러고 있는지를 되묻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우울하지 않다. 불면은 이따금씩 찾아오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되짚어볼 수 있게 되었으며, 내 안에 자리한 갈등을 조금씩 풀어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실패하지 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꿈을 이루는 것과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다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꿈을 이루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가 상상한 것과 다를 수 있다. 꿈은 희망과 동기를 주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그로 인해 꿈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꿈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원했던 것 과 실제로 얻은 것 사이에는 간극이 생길 수 있다. 이 간극은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우리는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었나?” 하고.


현재가 평안하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언제든지 변화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순간이 오면 새로운 책임과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실패의 아픔이 함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공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는 기대와 다르게, 실패는 이따금씩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를 통해 더 깊이 성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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