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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06. 2024

3장 | 비로소 시작되는 관계

경계를 지고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기 전,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부모님께서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해주시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러나 어린 나는 ‘돈이 없음’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조금 자란 뒤에는 빚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서 마음속 한구석이 늘 불편했다.


내가 21살이 되던 무렵, 아빠는 오래 다닌 회사를 이어받아 사업을 시작하셨다. 사업을 시작한 후,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은 확실히 좋아졌다. 이전보다 비싼 외식 음식을 먹고, 부모님의 자가 아파트가 생겼으며, 꿈에 그리던 예쁜 나의 방이 생겼다. 그러나 최근, 우리 가족의 소중 한 보금자리인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하지만, 엄마는 무척이나 속상해하셨다.


나는 부모님이 다시 힘들어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부모님에게도 빚이 있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오는 타격은 없어. 내 빚이 아니니까.” 이어 “그리고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했을 때, 객 관화가 잘 되어 있어서 안심된다고 하셨어.”라고 덧붙였다. 아주 명쾌한 해답이었다. 누군가는 이 짧은 몇 마디를 두고 가족 간의 정에 대해 논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가족 안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으면 항상 심각하게만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무너진 모습을 보이면 나의 마음은 지하까지 떨어져 파고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들게 일하시는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고, 이것은 죄책감이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하였다. 특히 엄마와는 유대감이 깊은 편이어서, 엄마가 우실 때면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지내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극단적으로 우리 아파트에 큰 문제가 생겨 예전처럼 돌아간다고 상상해 보자. 평소의 나였다면 아마 부모님의 마음을 살피느라 감정에 못 이겨 나에게 주어진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이야기를 조언 삼아 생각을 바꿔보면, 나는 자취를 하고 있고 당장 집을 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동생은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인을 신경 쓰느라 바쁠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데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지만, 난 그저 내가 지내온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친구와의 대화 이후로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아직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았음에도 최악을 상상한다거나, 불안한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가끔씩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이내 빨리 접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상대를 분리해 생각해 보자. ‘내 일이 아니니까’ 하고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상대의 감정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충분한 공감과 교류를 한 뒤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연습이 필 요하다는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객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방안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좀 더 단단한 사람으로서 지지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떤 문제가 찾아와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잃지 않는 나만의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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