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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07. 2024

4장 |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잘 먹고, 잘 자기

그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반해버렸다. 잘생긴 외모도, 신사적인 말투나 행동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지금 다니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이다.


이곳은 벌써 다섯 번째 병원이다. 첫 번째 병원은 나와 처방이 맞지 않았고, 세 번째 병원은 집이 가까워서 선택했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병원은 입원 치료 후 잠시 다녔던 대학병원이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의 첫인상도 그저 ‘나쁘지 않다’ 정도였다.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되자, 나는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앞에 앉아 있던 의사 선생님은 그동안의 다른 의사들처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선생님은 처방을 내려주었다.


“우리는 딱 두 가지만 할 거예요. 잘 먹고, 잘 자는 것. 나머지는 제가 다 해줄게요.”


보통은 “운동을 해보세요.” “밖에 나가 산책해 보세요.” 같은 어려운 처방을 듣던 터라, “잘 먹고, 잘 자라”는 말이 너무나 간단하게 느껴졌다.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당장이라도 시도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이 병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겼다.


2주 후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기분은 어떤지 물었다. 나는 약을 먹어도 잠에 빨리 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시 더 먹을 수 있는 약을 처방해 주며, 당분간은 ‘잘 먹고, 잘 자기’만 실천하라고 했다. 처음엔 이것조차 어려웠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너무 잘 먹고, 잘 자서 문제가 될 정도가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기’라는 처방을 실천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갔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잠에 드는 게 어려워 하루하루가 다시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큰 변화를 경험했다. ‘잘 먹고, 잘 자기’를 실천하자 몸이 회복되는 걸 느꼈고, 몸이 회복되자 마음의 회복도 따라왔다. 이제는 거창한 해결책을 바라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습관들이 나를 지키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삶이 버겁게 느껴져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길 바란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처럼 말이다. 이 간단한 실천이 결국 당신의 삶에도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돌보는 것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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