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정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명확해진다. 무정이 걷기 시작할 무렵,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겨우 몇 개의 단어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통해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다은은 늘 무표정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난 상태였다. 무정이 울거나 감정을 표현해도 다은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정의 감정을 억누르기만 했다.
이런 양육 환경 속에서 자란 무정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었다. 네 살 때 어린이집에서의 사건도 그랬다.
“무정아, 내 머리 예쁘지? 엄마가 묶어줬어.”
한 친구가 다가와 무정에게 말을 걸었다.
“와, 너 예쁘다! 부러워! “
무정은 주변 친구들의 부러운 목소리에 심경이 거슬렸다. 친구의 머리가 자신보다 더 나아 보이자 질투심이 치밀어 올랐고,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자 강한 통제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무정은 이런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고, 결국 친구의 다리를 연필로 내리꽂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이 폭발하는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친구에게 어떤 아픔을 주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무정은 다은이 집에 들어온 이후, 줄곧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는 잘 준비를 하더니 금세 잠자리에 든 것 같았다. 방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한 후 한참 기다린 무정은 조용한 발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곤히 잠든 다은의 옆에 우뚝 선 무정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다은의 얼굴에는 무의식의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그 모습은 무정을 분노케 했다.
무정은 분노와 더불어 도현과의 특별했던 감정을 자신으로부터 느끼게 해주고 싶은 갈망이 올라왔다. 이것은 자식으로서의 애정과는 달랐다. 다은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었다. 무정은 마음속에 굳은 결심을 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