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거기! 운전 똑바로 안 해? “
화가 난 아저씨의 고함이 창문을 두드리자, 어젯밤 생각에 아랫입술을 깨문 채로 넋이 빠져있던 다은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놀란 마음으로 비상깜빡이 버튼을 누르고 여러 번 죄송하다는 액션을 취했지만, 아저씨의 날카로운 시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은이 지친 모습으로 서점에 발을 들이자, 직원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막내 서원이 다은을 발견하고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뛰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사장님! 주해란 작가님께 연락 왔어요! 어쩜 좋아요? 저희 서점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
다은은 최근 서점을 확장하면서, 인지도가 있는 작가를 섭외해 독서토론회를 여는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은과 직원들이 좋아하던 작가의 섭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다은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차 어둠이 드리울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원은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장님, 안 기쁘세요? “
“아. 그럴 리가, 내가 작가님을 얼마나 존경하는데. 작가님이랑 미팅 자리 만들어야 한다고 승우한테 전해줘. “
서원은 다은에게서 영 시원찮은 반응을 얻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다은의 눈치를 살피고는 자리를 피해 줬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도현이 다가가 다은에게 말을 걸었다.
“다은씨. 아니, 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음, 괜찮으시면 월광책방에 같이 가실 수 있는지 여쭤보려 했어요. 오늘 책 한바탕 정리하신다고 하셔서 아마 늦게까지 문이 열려있을 거예요. 내일 저희 쉬는 날이니까, 가서 도와드려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
다은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차라리 책방에 들렀다 늦게 집에 가는 게 나을 거라 판단해 선뜻 제안에 응했다.
본격적으로 손님들이 몰려오자, 다은은 개인적인 감정은 뒤로한 채 서점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익숙한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면접자였던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다은은 일단 반갑게 맞이했지만, 혹시나 면접에서 떨어진 것에 대한 복수심에 무슨 짓을 하러 왔을까 봐 내심 걱정을 했다. 여성은 특정 책을 찾는 듯 서점을 두리번거리더니, 책 하나를 꺼내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다은이 계산을 하면서,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여성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가씨, 아니지! 사장님. 그때는 제가 죄송했어요. 너무 무례하게 군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안 좋더라고. 아들한테 면접본 거 얘기했더니, 떨어질만했다고 그랬다고 혼났어요. 이 책은 사과의 선물이에요. “
여성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구입한 책을 내밀었다. 다은은 예상치 못한 여성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책을 받아 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책 선물 감사합니다. 잘 읽을게요.”
“그래요. 읽으면 좋을 거야. 84페이지를 꼭 읽었으면 좋겠네. 유명한 책 많지만 난 이 책이 참 좋더라고. 요즘 좋은 책이 너무 많아. 읽어도,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으니까 뭘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니까. 나는 책 얘기할 때가 그렇게도 행복해요. 음, 또 추천해 주고 싶은데 뭐가 이… 아이고, 내가 또 말이 길어지네. 나보다 더 잘 아실 건데 주책맞게.. 아무튼 잘 읽어요. 나 이제 가볼게요. “
여성은 민망한 듯 괜스레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돌아섰다. 다은은 여성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여성을 불렀다.
“아, 저기! 그.. 조만간 저희 서점에서 독서토론이 예정되어 있는데, 괜찮으시면 한 번 오세요. “
다은은 자신의 편견을 깨뜨려 준 여성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진심 어린 사과에 화답하는 의미로 독서 토론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