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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전거 01화

프롤로그

<1>

by book within

어렸을 때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컴퓨터나 게임기를 사주기보다는, 킥보드나 인라인 스케이트, 배드민턴 라켓, 축구공 같은 값싸고 밖에서 뛰어놀 수 있는 물건들을 사주셨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 큰맘 먹고 사주신 A사의 자전거는 내 최고의 놀거리였다. 7살의 나에게 다소 커 보였던 자전거는, 내가 성장할 때까지 날개가 되어주었다. 나는 갈 수 있는 길을 최대한 넓혀나갔고, 엄마와 함께 갔던 길들을 따라가며 나만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 덕분일까, 아직도 자전거를 보면 마음이 변한다. 안장에 앉아 손잡이를 잡는 순간, 온몸이 가벼워지고 집 안에서 묶여 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바람 속으로 실려 흘러가는 듯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자전거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붙잡혀 있는 고민과 감정을 정리해 주고, 탈출구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도움도 이미 5년을 넘어섰다. 이전보다 빨리 소진되는 에너지 때문에 몸은 자발성과 자제력을 잃어갔고, 예전 같았으면 나가서 산책이라도 했을 정도의 기력을 집에서만 쓰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볼까 싶어도, 녹이 슬고 바람 빠진 채 베란다 구석에 놓인 자전거는 나를 보는 듯했다. 괜히 내 감정을 무생물에 투영하며 핑계를 만들었다. 이따금 거리에 늘어진 따릉이를 시도해 보지만, 몇 번의 페달질에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미리 상상하며 포기했다.


오늘은, 더는 안 되겠다 싶은 날이었다. 출퇴근길을 위해 늘 지나던 지하철역 입구, 파란색 간판의 자전거 가게 문을 열었다. 로드 자전거는 처음부터 내 선택지에 없었다. PAS, 페달 보조 시스템이 달린 검은색 전기 자전거가 내 손에 쥐어졌고, 사장님의 몇 번 반복된 “배달해 주겠다”는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돌았다.


“타고 갈 거예요. 괜찮아요. 저 자전거 잘 타요.”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말이었다.


페달을 밟자, 급격히 오르는 속도에 숨이 막혔다. 서비스로 주신 헬멧 덕분에 다소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었고, 머리와 안장이 몸을 압박해 오히려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5년 만에 느껴보는 바람의 흐름, 바퀴가 도로 굴곡을 타고 얼굴로 올라오는 시원함에 숨을 깊게 내쉬었다. 배터리를 끄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속도는 이 감각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오랜만에 마주한 자전거 안장은 사타구니와 엉덩이 사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긴장감으로 뻐근해진 팔과 굳은 승모근까지, 내일 하루가 고될 것을 이미 예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터널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오른쪽에는 고등학교, 길 건너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평상시엔 고요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늦은 저녁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는데… 뭐지?”

괜한 공포감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하철만 타고 다녔던 이 풍경이 낯설었다. 도로 끝까지 인파가 이어져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렸다. 안장 높이와 손잡이 균형을 다시 조정하며 몸을 풀었다.

그 순간, 누가 나를 붙잡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다. 시선을 돌리자, 놀랍게도 창훈이었다. 대학 시절, 제주도로 일주일간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달리면서도,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를 끼고 달렸었다. 창훈이는 웃으며 나를 끌어당겼다.


“아직도 자전거 타고 다니는구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터널 입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창훈이와 함께, 말없이 걸었다. 서로 옛날 기억을 쫓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지,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졌다. 발자국 소리만이 귓가를 울렸고, 터널 안은 이상하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도 출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창훈아…”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가 사라졌다. 시야가 하얗게 변하며, 몸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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