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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안,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이며 알림을 뱉어냈다.
'사우스햄튼 vs 아스날, 오늘 밤 11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축구는 내 유일한 탈출구였다. 누군가에게는 금요일 밤이 일주일을 털어내는 순간이겠지만, 나는 무조건 휴식이 우선이었다. 회사 사람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되살아났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잠들었구나.
밤에 있을 경기 준비를 위해 샤워를 마치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11시를 기다렸는데, 오늘은 도무지 경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은 넓은 경기장을 오고 가는 축구공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일주일 전, 대학 동기 결혼식에서 시작되었다. 밝디 밝은 결혼식장의 화려한 조명과 장식 아래, 모두가 몇 년 전으로 돌아간 듯 웃고 포옹했다. 나는 그 기분을 맞추려 애썼지만 도무지 닿지 않았고, 더욱 낯설어졌다.
“야, 오랜만이야!”
길게 보면 10년 만에 만난 동기들의 미소는 어쩐지 연극 같았다. 당연히 나도 그 안에서 애쓰고 있었고, 몇 명은 어색한 눈인사로 끝났으며, 또 다른 동기들은 지나치게 살갑게 굴었다.
그 순간, 10년 전 잊으려 애썼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웃음, 그리고 그 뒤의 침묵. 혼자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신경 안 써.”
가슴 한구석이 묵직했다.
괜히 누가 토를 달까, 궁금해할까 봐 축의금 내는 일조차 혼자서 영화를 찍듯 했다. 동기들과의 인사, 축의금 내기의 두 가지 중대한 미션을 해내고 나서야 주변이 뚜렷해졌다. 하지만, 또 누군가를 마주칠까 두려워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며 축구 팬 카페에 접속했다. 어제 경기를 요약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화면 속 선수들은 자유로웠다. 그 모습이 내가 꿈꾸는 나였다.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달리는 나.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회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축구 모임에서도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도. 하고 싶은 걸 하면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이상한 희망을 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투는 어색해지고, 눈은 자꾸 다른 곳을 향했다.
그렇게 기운 빠지는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기대 잠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평소 꾸지 않던 꿈들이 하나둘씩 연결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