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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글에서 바다에 관한 다소 감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글을 다시 정리해 보니, 그때와 지금의 내가 너무나도 달라졌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제는, 굳이 바다를 바라보지 않아도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진짜 내가 숨을 쉬고, 소리를 내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였습니다. 스무 살 중반, 여러 이유로 숨어 지냈던 시절에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볼수록, 배운 게 더 많았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시도들이 이제는 삶의 방식으로 남았습니다.
거칠었고, 확신도 없었던 행동들이었습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찾을 수 있었고,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알 수 없는 위험과 동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던 인간의 본능처럼 지금의 우리도 여전히 어떤 경계심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래도 고전적인 생존의 방식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처럼 어이없는 우연에 죽음을 마주 할 테니까요.
그 생존 방식이 아직도 남아서, 알지 못하는 일과 처음 마주하는 일 앞에서 크게 작동합니다. 그래서 낯선 상황 속에서 허우적대며 길을 잃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도와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일 앞에서 느껴졌던 그 막막함과 무력감을, 무식함과 젊은 패기마저 순식간에 사라질 때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 때 그렇게 바다를 찾았지만, 지난 2년 동안 마주한 바다 앞에서는 예전만큼의 동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도망쳐야 할 이유가 줄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불안한 일 앞에서 차분해지는 법을 배워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에게 미안하지만, 지루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뭐가 그렇게 많이도 슬펐을까. 이제 바다로 도망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불규칙한 건물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런 변화들이 무섭지 않습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스쳐 지나가는 봄과 가을처럼 가끔씩 변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물론, 사소한 변화는 있습니다. 매일의 온도 변화가 다른 것처럼, 이제는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 속에서 함께해 보라는 말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서 또 다른 곳을 찾아가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