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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2)

<9>

by book within

바다를 갈 때 가장 많이 찾은 곳은 강릉입니다. 혼자서 해운대도, 울산의 대왕암도 구경해 보았지만 서울에서 너무 멀었습니다. 그 앞에서 느꼈던 것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서쪽으로 향했지만 교통편이 복잡하거나, 인천과 강화도는 서울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감흥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동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강릉을 고르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산책길이 보다 수월하고, 혼자 쉴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강릉에 도착해서 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건 지루하지 않습니다. 점점 느껴지는 창밖의 바닷 공기와 함께 순두부마을과 해변 사이에 위치한 정류장에서 내리면, 그 앞에 해변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안목해변까지 이어진 길을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기에 걷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습니다.


이 시작점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강문해변의 솟대 다리입니다. 여기서 여행이 시작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얀 갈매기 날개를 늘어놓은 듯한 다리에 꼭 올라서야 합니다. 다리 중간쯤에 서서 밑을 바라보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세 방향을 바라보는 세 마리의 갈매기 조형물과 그 사이에 동전으로 가득 찬 그릇이 있습니다.


-동전으로 가득한 그릇이 햇빛에 비치면 나는 오묘한 빛이 바다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동전을 던졌습니다. 삼백 원이면 충분했습니다. 들어가는 동전을 바라보며 빌었던 소원들은 절대 급하게 만들어낸 것이 없었습니다. 그 해에 몇 번을 주저했던 일들, 용기 내지 못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도와달라고 얘기했습니다. 해주세요!


평소에는 그런 용기를 내는 게 어려웠습니다. 온전히 받아보려고 애쓰지만 작은 불안감이 몸을 불편하게 만들고 몇 초를 주저하게 했습니다. 잠깐 밀려난 것 같다는 걱정을 가진 겁쟁이는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게 쌓이고 쌓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먼 곳으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게 바다였고, 동전에 무거운 마음을 담아서 떨어트렸습니다. 다소 과해지는 다짐과 자의식까지 바닷바람에 털어내고 나면,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은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것 같습니다. 강릉까지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한 번,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두 번, 다리 위에서 세 번, 그렇게 여러 번을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습니다. 바다에 가는 일이 현실과 꿈에서 도망가는 일이 아니라는 걸, 뭔가에 기대 보려는 나약함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소리를 지르려고 가는 여러 번의 길 위에서, 바다 앞에서 ‘수많은 나’를 만났습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그래서 아직도 여행을 가는 길에 차를 타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 속도가 좋습니다.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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