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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바다 가려고요"
"아, 좋겠다"
말과 달리 올여름은 휴가 계획이 없었습니다. 돈을 조금 더 모으고 싶어서, 오랜 시간 만났던 사람과 헤어져서, 그래서 차라리 일하는 게 나아서. 많은 이유와 핑계가 가득해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다라도 가야 하나?
휴가철이 다가올수록 주변인들 절반 이상, 그들의 목적지에는 바다가 있었습니다.
바다를 엄청나게 좋아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초반, 분기별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나 일을 마치고 시간이 나면 바다를 찾았습니다.
매 순간마다 변화를 거듭하는 서울과 달리 늘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다에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가만히 제 자리만 지켜도 찾아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만큼 대단한 분위기를 뿜고 있으니까.
혼자 갔을 때는 바지를 걷고, 친구들과 함께라면 온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즐기고 정신을 차려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마주합니다. 그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시간을 내서 찾아간 바다를 최대한 오래도록 간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코에 맺히는 듯한 바닷바람과 모래들이 몸 안까지 들어오고 나면, 그게 그다음 몇 달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는 불안하고 지쳐서 그랬을까요. 바다 자체는 별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쉬는 게 좋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건 그 이전의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거니까. 그 작은 뿌듯함을 꼭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은 대단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그럴 수 없었나 봅니다.
자신감을 가지려고 비겁한 방법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거대한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는 그 행동은 그저 자기 위로에 불과했습니다.
왜 종종 잊어버릴까 싶습니다. 모든 감정과 생각, 그에 따른 행동과 태도를 남과 비교합니다. 조금이라도 못난 점을 찾고 그렇게 아주 쉽게 자신감을 얻습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꼬아놓은 채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짧게 쏟아냈습니다. 운이 좋다면 이 방법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그 반대로 사람을 끌고 들어갑니다.
겉과 달리 속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배로 늘어나는 일을 꽤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얻은 것들이 허황된 걸 알기에. 내가 진짜로 해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스무 살의 마지막 해를 맞이했을 때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진짜 '나'로 살아보기로.
내 감정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여기저기 쑤셔 놓은 것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몰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혼자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를 핑계로 그 앞에서 던져놓았던 생각과 감정들이 파도와 바람을 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바다에 가면,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 책 한 권을 꼭 챙깁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속을 끓임없이 비워냅니다. 비워낸 몸에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