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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2)

<7>

by book within

이전 글에서 얘기한 이유들로 인해 서점을 들렸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광화문의 큰 서점을 지나서, 종로를 향해 조금 걸어가면 있는 영풍문고에 들렸던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지하철 통로와 연결되어 있는 서점은, 퇴근길에 지나칠 수 없는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걸어가면 있는 종로서적도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월요일이면 다들, 퇴근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다른 날과 달리 6시부터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기 시작합니다. 그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서점에 들렀습니다. 고전문학 코너에 들러서 <멋진 신세계>를 집어 들었습니다. 여러 번역본을 두고 고민하던 찰나에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분이 말을 걸었습니다.


-책 좋아하세요?

-아, 네…

-대학생이죠?

-아뇨


집중하던 공간이 침범당한 것 같았습니다. 그 시간에 서점에 온 목적이 흐려질까 봐 두리뭉실 대답했습니다.


-저희가, 책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래서 설문조사 같은 거 하려고 하는데 해주실래요?


책을 만든다는 얘기가 흥미롭긴 했습니다.


-종교를 왜 믿는다고 생각하세요?


여기서 눈치챘어야 했습니다.


-뭐, 죽는 게 무서워서? 사는 게 힘들어서 기댈 곳이 필요한 거겠죠?


말이 길어지면 피곤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최대한 냉소적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때, 뒤에 멀찍이 서 있던 남자가 핸드폰에 켜져 있는 구글 폼을 들이밀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편협된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들에게서 나이대에 맞지 않는 눈을 마주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어느 사람들 보다 영혼 없는 네 개의 눈이 거부감을 들게 했습니다. 빨리 설문조사만 해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글 폼에 있는 3개의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1. 평소에 책을 자주 읽으세요?

2. 종교가 있으신가요?

3.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어주세요.


이상하죠? 얼마나 가벼운 책이길래 이렇게 맥락 없는 듯한 질문들을 할까, 아니 완전 처음하시는 분들인가 싶었습니다.


-질문이 이게 다예요?

-네.


이게 뭐냐는 듯이 물었던 제 질문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건지, 무시하는 건지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해야 헤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이걸 할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다른 분들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자리를 피하려는데 한 번 더 붙잡더군요. 그러면 저희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시면 안 되냐고,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느낌이 왔습니다.

싫다고 하니, 카카오톡 아이디라도 알려달라고.


-카톡 아이디는 몰라요. 들어가세요. 고생하세요.


결국, 책을 고르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서야 그게 특정 종교의 포교활동 방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많은 책들 사이에서 말도 안 되는 걸 쫓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엄청난 노파심과 허영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겪은 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직도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사람들이 좁은 세상에 갇혀 버린 게 기억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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