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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사라진 여름 뒤로 가을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엔 기분이 시도 때도 없이 급격하게 변합니다. 시원하다고 느꼈다가도, 금세 스며든 비에 불편함을, 그 불편함이 조금 커지면 젖은 옷에 체온이 뺏겨 추위를 느낍니다. 우산 밑으로 울리는 빗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다가도 누군가와 우산을 부딪히거나, 서로에게 빗물을 뿌려대면 급격히 머리가 무거워집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더 이상 젖기 싫다는 이기심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지만, 그런 날이 아니라면 기분이 달라집니다. 중요한 날에 비가 오고,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면 예민함과 긴장감이 엉겨 붙습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이런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평소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새치기를 마주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고, 그 사람의 우산 끝에 팔 한쪽이 축축하게 젖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건 그냥 비 오는 날의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이면 기분이 나아질까요? 최대한 몸에 힘을 풀고 빗물과 바람에 모든 부정적 감정이 날아갈 수 있도록 애써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통제되지 않았던 감정과 행동들이 아직 조금씩 남아있습니다. 이들은 순간순간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사회적 학습으로 조금 나아졌다고 판단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은 다 내던지고 싶은데, 그런 행동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참는 것 만이 다는 아닐 텐데, 이러다가 속앓이에 병이 걸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아직도 외부의 시선과 판단에 기대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걸 알면서도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스스로 방법을 찾는 일에 피로함을 느끼고 쉬운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더 나은 방법이 있을 텐데.
여름이 지났지만, 연휴 내내 내렸던 비처럼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습니다. 비가 그치면 그 사람도 조급함을 내려놓고 다시 평온해지겠죠. 저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발걸음을 재촉하고, 또 하루를 보낼 겁니다. 쉴 새 없이 기분을 흔들어놓는 서울에서, 잠깐이라도 멈춰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형식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글을 써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