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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사춘기에 성격이 오락가락하며 자의식 과잉과 엄청난 상상으로 인해 부정적이고 우울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진득하게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가 없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가 바뀔수록 그 관계를 이어가는 게 되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웃는 모습이 별로 없습니다. 그때를 돌아볼수록 후회되는 순간들을 마주합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몰랐을까. 이전에는 그 이유들을 바깥에서 찾았고 온갖 핑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연히 더 피로해졌고 머리만 멍해졌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게 된 순간입니다.
-기억이 희미하고 왜곡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꼭 일대일로 면담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뭘 많이 적었었는데, 희망하는 꿈을 적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모르겠다’고 적었습니다. 정말 어릴 때는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매번 고민했습니다. 그때는 모든 일이 재미없어 보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일찍 결정 내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뭐라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었으니까요. 흥미 있는 과목에만 집중했고, 그렇지 않은 수업시간에는 틈만 나면 말장난을 하고 친구들과 장난을 쳤습니다.
-내가 얘기해 줘도 될까?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선생님의 권위가 느껴지는 듯한 태도에 긴장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네?
-아니, 여기에 모르겠다고 쓴 게 마음에 걸려서. 나는 00가 글을 쓰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작가나, 신문기자나.
예상하지 못했던 대화의 흐름에 긴장이 풀려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갑자기 기분도 좋았습니다. 누가 제게 뭘 해봤으면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때, 공부로 남들과 경쟁이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소년이었음을 일찍 깨달았다고 할까요.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마음을 회복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용기와 의지도 없었습니다. 낮은 자존감을 숨길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었습니다. 집에서 삼사십 분 거리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게 조금 도움이 되었는지, 글쓰기로 몇 번 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권유도 그것 때문일까 싶었습니다.
- 00야, 너는 한 번에 대답한 적이 없어. 항상 아니라고,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가 많잖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돌아보면, 좋은 기억보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그것도 장점이 될 수 있거든
-아, 죄송합니다.
-뭐, 잘 생각해 봐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어린 마음에 이기적이었던 제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그래서 돌이켜볼수록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방식이었습니다. 과하지도 너무 순하지도 않은 훈계와 응원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신문방송학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다르게 남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던 짧은 시간이 길게 남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진학과 지금 하고 있는 일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부임 초기에 학생과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지금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늦게나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