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갈림길에서

<14>

by book within

작년부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3월부터 틈틈이 이직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자격증 공부는 늘 손에 잡히지 않았고, 머리도 아팠습니다. 공부에는 소질이 영 없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수 차이로 떨어진 탓에 더 마음이 내려앉았지만 다음에는 나아지겠죠.


웬만한 일에 연연하지 않는 몇 년이었는데, 요즘 들어 급격히 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뒤처지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낍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 20대를 보냈습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30대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했습니다. 손을 펼쳐보니, 쥐고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20대의 끝자락에서 갈림길에 섰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부족한 만큼 더 나아갈 용기를 가진 사람과, 열정에 못 미치는 실력과 재능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사람. 저는 웃기게도 그 사이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부족한 실력과 재능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썼습니다. 부족한 실력을 채우고, 또 다른 방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갔습니다. ‘돈’을 핑계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과 능력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갈림길에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미약한 발걸음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온전히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시작은 경제적인 이유였지만, 이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스스로 도전하고 이뤄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고, 올해 또 다른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동시에 붙잡으려 애쓰는 지금, 뒤늦은 장마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그냥 맞아도 될 텐데, 아직은 우산을 쓰지 않을 용기가 없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여전히 어떤 망설임 속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움직이지 않으면 밀려나고, 멈추면 잊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주의 밤마다, 빗소리가 소음을 삼켜버릴 때의 고요함을 즐겼습니다. 바쁜 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짧은 정적과 함께 잠깐이나마 멈춰 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깐 멈춰봤는데, 저는 그대로였습니다. 한 해의 4분의 3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버렸습니다. 25년은 너무 앞만 보고 달려버렸다는 것을. 잠깐이라도 멈춰 설 수 있는 용기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름이 다 지났음에도 내렸던 장마가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선생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