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게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의 대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한 백인 아주머니는 한국은 중국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물어보셨고 엊그제 만난 식당 종업원 아저씨는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셨다.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든 생각은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구나 하는 동시에 여전히 한국이 어디에 있는 국가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구나였다. 한국을 전혀 모른다고 해서 화가 나지는 않는다.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모를지라도 나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내게 한국은 어디에 있는 국가냐고 되물어본다면 그저 대답해 주면 된다.
주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남이었다. 길을 걸어가며 스쳐 지나갈 나에게 굳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사람들은 몇 분 후 내 인생에 없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게 인종차별을 하는 것에만 그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은 무섭고 시간이 흐르면 화가 난다. 그래도 결국은 나의 인생에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은 채 내 인생에 중요치 않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아직까지 공적인 곳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 인터넷에선 여전히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있는 일들이기에 내게 일어나지 않아서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괜찮은 세상이라고 볼 수는 있었다. 미국에 오고 나서 더 드는 생각이지만 세상에 참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 영화와는 달랐지만 예상보다 더 닮은
미국에 온 순간부터 나는 한국인이기보다 아시아인으로 더 많이 정의되었다. 서류 작업을 할 때도 어느 국가에서 왔는지보다 어떤 인종인지를 더 많이 물어봤다. 자연스럽게 나는 아시아인으로서 그들과의 유대감이 생겼다. 대학교에는 미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온 학생들부터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이 존재했다.
미국에서의 첫 학기에 같은 기숙사를 쓰게 된 아이들은 백인 미국인, 과테말라인, 일본계 미국인 여자 아이들이었다. 그중 나는 백인 미국인과 과테말라인 아이들과 친해졌다. 그 후로도 다른 백인 미국인 친구들, 멕시코인, 한국에서 4년간 살았던 멕시코계 미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나니 나의 친구들은 크게 미국인, 라틴계, 아시아인으로 나누어졌다.
미국인도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았던 아이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살았던 아이들로 나뉘었다. 그러고는 다시 백인과 라틴계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나뉘었다.
백인 미국인 친구들도 평생을 어디서 살았는지에 따라 많이 달랐다. 대도시에서 살았던 미국인 친구는 미국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미국인 여자 아이와 비슷했다. 다른 지역에서 살았던 다른 미국인 친구들은 조금 더 친근한 이미지였다. 이 친구들도 내가 인천에서 처음 느꼈던 부산 사람들과 수도권 사람들의 느낌과 비슷했다. 그들 사이에 큰 차이점은 없었다.
다만 내가 몰랐던 미국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가졌던 미국인들의 편견은 아무와도 금방 친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미국인들은 항상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이 벽은 인천에서 만난 친구들에서도 느꼈던 벽이었다. 서울사람이라 친절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그들과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인들은 내게 서울사람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둘이 비슷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고 했을 때 미국인들은 서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친해지기 어려웠다. 미국인의 특성상 안부를 묻고 스몰토크를 하는데 자연스럽기 때문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도 항상 벽이 있었고 벽을 넘어 그 이상으로 친해질 수 없었다. 여럿이서 함께 놀 때는 정말 재밌고 좋은 친구들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 깊은 관계를 맺기에는 어려웠다.
멕시코계 미국인은 특이하게도 한국에 있는 캠퍼스에 오래 있으면서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 문화에도 굉장히 익숙했다. 그 아이는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에 모두 능통했고 세 나라의 문화를 모두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아이는 그 아이만의 특별한 특징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들은 부모님이 일본인이신 아이와 베트남인이 신 아이로 나뉜다. 그들은 부모님이 어떤 국가에서 오셨는지에 따라 굉장히 차이가 났다. 일본계 미국인 친구는 나의 첫 번째 룸메이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1년간 함께 살면서 대화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룸메이트 친구들과 다르게 그 아이는 다른 룸메이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거실에서 잠깐씩 마주치는 게 다였기에 나는 그 아이와 별로 친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옆 방에 살았기에 화장실을 같이 썼었다. 그 아이는 항상 다른 아이들과 함께 쓰는 공간에 절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쓰레기도 항상 자신의 방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기에 공용 공간에서 그 아이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반면 베트남계 미국인 친구는 나의 두 번째 룸메이트였다. 그 아이는 처음 기숙에서 들어올 때도 온 가족들과 함께 왔었다. 마침 점심을 요리하던 나는 주방에서 얼떨결에 그녀의 가족들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함께 살았던 반년 동안 우리는 어느 정도 친해졌지만 다음 학기의 새로운 한국인 룸메이트를 계기로 우리 셋은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가 되었다. 1년간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그녀의 특징은 전형적인 아시아계 부모님 밑에서 자란 미국인이란 점이었다. 낯을 가렸지만 친해지고 나면 엉뚱한 장난도 많이 치고 학교 행사도 웬만하면 다 참여할 정도로 활발한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매주 휴일이면 집에 가서 동네에서 알바도 하고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3명의 동생들도 살뜰히 챙기는 굉장히 좋은 언니였다.
첫 번째 룸메이트 중 한 명이었던 과테말라인 친구와 맥시코인인 친구는 서로 다를 나라에서 왔지만 굉장히 비슷했다. 라틴계 친구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라틴계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정이 많고 음주가무를 즐겼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그들은 우리처럼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로 맨 처음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시아계 사람들은 일단 어떤 국가에서 왔는지가 중요하다. 다 같은 아시아계 사람들이어도 대부분 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타인이 나와 문화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 내가 잘 아는 국가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기에 아시아계 사람들은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같은 아시아인이어도 큰 유대감이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라틴계 사람들은 일단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일차적으로 유대감이 형성된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대부분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에 언어만으로 많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아시아계 사람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미국에서 만난 아시아인은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친구들이었다. 우연찮게 일본인 무리들 중 두 명과 친해져 함께 동물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의 바르고 조용한 일본인보다는 한국 젊은이들과 거의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예의가 바르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조용한 편이지만 친구들과 무리 지어 놀 때는 활발했다. 한 가지 한국인 친구들과는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에게서도 미국인에게서 느꼈던 벽이 있었다. 미국인과 달리 그들은 동양인 특유의 예의 바름과 차분함이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나는 다른 라틴계 친구들보다 친해지기 어렵다고 느꼈다.
대만인인 친구는 일본인 친구들과 굉장히 달랐다.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고 있지만 훨씬 활기차고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어디서든 밝고 인사해 주었고 짧더라도 항상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만은 일본보다 먼 나라지만 마음은 한국과 더 가까웠다.
- 외국인으로서의 삶
미국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벌어진 사망 사건으로 인해 'Black Lives Matter'란 사회 운동이 한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이 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흑인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 또한 이 운동을 계기로 흑인들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 오면서 흑인들에 차별과 인종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먼저 미국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총기소유가 자유롭기 때문에 많은 미국 사람들이 평상시에도 총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 총격으로 인한 경찰 사망 사건도 많기 때문에 경찰의 입장에서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의 총기소유 여지는 굉장히 불안한 요소일 것이다. 뉴스에서 봤던 공권력을 남용하여 흑인을 과잉진압하던 미국 경찰의 모습과 달리 많은 미국 경찰들이 자신을 보호하며 맡은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크게 생각이 바뀌게 된 것 중 또 하나는 인종차별이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 평생을 살았던 나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차별을 경계하고 싫어하는 나지만 내게 딱히 해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에 신경 쓰는 게 가끔은 저렇게까지 인종차별을 구별해 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외국인이 되어보니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미국에는 자국민 외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더 엄격할 수밖에 없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최대한 뭉쳐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국가가 아닌 인종으로 사람들을 분류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한 무리로 뭉치기 위해 노력하다. 외국인들은 이미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자국민과 매우 다른 대우를 받는다. 차별이 익숙한 그들이기에 인종으로 인한 차별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차별은 단순히 오늘 내 하루를 기분 나쁘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나의 생계를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외국인이 되어 외국인으로 사는 삶을 이해하고 나니 인종차별은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합법적으로 비자를 발급받고 정당한 돈을 지불하였는데도 차별을 받는 것은 억울했다. 무엇보다 차별을 받는 이유가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라면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 중 아시아인들은 유령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딜 가든 영어와 스페인가 적혀있고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한인타운을 제외한 곳에서는 한글을 볼 수도 한국어를 듣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흑인들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외칠 때 아시아 사람들은 백인과 흑인 그 어느 사이에도 낄 수 없었다.
내가 고를 수 없는 차이들이 내가 차별받는 이유가 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인종과 성별이 인격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차이를 차이로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