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언어가 바뀐다는 것

by 전세화

미국에 와서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 바뀐 것들이 있다. 먼저 겉치레 없이 나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쓸 때 바뀐 점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평소에도 말이 이성적인 경우가 많은 나는 항상 너무 차갑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종종 나의 말이 너무 날카로워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는 나이기에 그런 부분을 덜 신경 써도 된다는 점이 매우 좋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이렇게까지 말을 직설적으로 해도 된다고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럴 때면 미국에서 사람들이 말에 감정을 얼마나 배제하고 말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두 번째로 느낀 점은 의견을 의견으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말에서 감정을 배제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의견과 상대의 의견을 이성적으로 분리하고 의견과 감정을 분리한다. 상대의 의견에서 상대의 감정은 들어있지 않기에 상대가 사용한 단어를 무한정 곱씹으며 어떤 감정으로 얘기하였고 그 말이 어떤 숨은 의미를 가지는지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런 시간들을 줄였기에 의견을 의견으로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논의와 수용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느낀 점은 이야기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계급에 따라 존댓말을 써야 하기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이야기하기 힘들다. 반대로 존댓말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존댓말에는 자신의 위치를 낮추어 존대를 표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계급을 낮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존댓말은 존중과 배려를 위해 필연적으로 계급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어는 기본적으로 대화를 하는 상대는 상대의 이름이다. 그의 직급이나 사회적 명칭으로 잘 분류도어 대화 중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렇게 대화의 시작에서부터 상대를 나와 동일한 그저 나와는 다른 이름을 가진 한 사람임을 인지하고 대화를 한다. 별것 아니게 보일지 몰라도 대화를 시작점에서부터 대화 중간중간에 우리는 동등한 상태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는 우리의 대화가 평등하도록 유지시킨다.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문화를 모두 담고 있다. 그렇기에 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여야 하고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나라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에 따라 언어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미국에서 영어를 쓰면서 미국이 자유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매우 느꼈다.

감정은 개인적이기에 통제할 수 없다. 나와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언어에서 감정을 배제시킨다. 감정은 감정을 표현하는 말로써 나타나며 이외의 말에서는 감정을 담지도 없는 감정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어는 영국에서 탄생한 언어지만 나는 미국에서의 영어만을 접했기 때문에 영국에서의 영어는 어떨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미국에서 영어를 쓰면 느꼈던 점은 이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바뀐다는 것은 나의 말에 대한 습관과 가치관도 변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더 많이 쓰면서 영어를 사용하며 사고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이는 나의 새로운 가치관이 되었다. 그러한 나의 습관과 가치관을 한국어를 쓸 때에도 나도 모르게 함께 묻어 나온다. 그렇게 나는 인지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우리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는 혼자 생각을 할 때에도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는 문화를 담았고 나의 말은 나를 담았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새로운 나를 찾았다.

keyword
이전 06화인천에서 미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