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고향, 부산
나의 인생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친척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부산에 사셨기 때문에 명절에도 머무는 부산이 나의 집이었다.
나의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기억들은 모두 부산에 있다. 내가 나고 자란 곳. 내게 가장 익숙한 풍경이 있는 곳.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곳.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록과 파랑이 있는 곳. 겨울에는 춥지만 눈은 내리지 않는 곳. 사람들의 정겨운 참견이 가득한 곳. 그곳이 나의 집이다.
나는 항상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의 꿈을 현실적으로 실현시키려다 보니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하여 외국에 있는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가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배우고 싶은 학과가 있어 선택한 학교는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배우고 싶은 학과와 대학교를 선택하여 진학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유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내게 더 우선순위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어도 대학생활을 잘 마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데 쓸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하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맞춰 모든 것을 준비하던 나는 진로진학박람회에서 우연히 한국에도 캠퍼스가 있는 미국 대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이유가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유학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던 나에게 그 대학은 희소식이었다. 또한 그 대학교에는 영화학과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그 대학은 유일한 희망과도 같았다. 유학을 가는 것보다는 훨씬 쌌지만 당연하게도 한국 대학교보다는 훨씬 비쌌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았으니 이제는 내가 그 길을 갈 수 있는 환경에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내가 꿈을 이룰 수 있게 가장 먼저 나를 무한히 믿고 밀어주신 어머니, 내가 그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십시일반 도와주신 모든 가족, 친척, 지인분들께 감사드린다. 한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부모님은 당신들의 모든 미래를 나에게 투자하셨고 그들에게 남이었던 수많은 분들이 내게 어떤 조건도 없이 지지와 지원을 해 주셨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을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원을 줄 수 있는 수많은 분들께 둘러 쌓인 행운을 가졌음에 한없이 감사하다.
- 나의 두 번째 집, 인천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맞은 1학년 첫 학기 중 대학교가 있는 인천에서 내가 보냈던 기간은 단 두 달이었다. 코로나가 더욱 심해지면서 나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남은 학기를 마무리하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의 첫 번째 대학생활은 끝나있었다. 코로나에 적응한 사람들은 코로나와 함께하는 새로운 일상을 천천히 시작하였다. 여전히 사람들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 있었지만 식당들은 조금씩 활발해져 가고 사람들은 회사와 학교에 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도 드디어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올라온 인천은 처음만큼 낯설지 않았다. 아직 어느 정도 기억이 나는 동네와 조금은 자유로워진 환경이 나를 이곳에 금방 적응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스크를 쓴 학생들의 실물을 볼 수 있는 수업도 생겼다. 대면 수업들을 통해 친구들도 조금씩 사귀어가며 나는 코로나 속 대학생활에 적응하고 그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부산에서 평생을 살았던 나에게 인천에서의 생활은 전혀 새로운 생활이었다. 모두가 한국어를 쓰고 여전히 모든 게 편리한 한국이라는 점만 빼고는 모듯 것이 부산과 달랐다. 부산에서만 살았던 내가 생각했던 수도권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서울, 인천, 경기도 주변 모든 지역이 신도시처럼 새로운 건물에 신기술로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수도권 속 많은 지역들이 부산과 다를 것 없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도시의 생김새만으로는 내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체감이 덜 들었다.
내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체감이 가장 많이 든 것은 부산에서는 한두 시간 내에 갈 수 없는 곳들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운 좋게 기숙사 앞집에 사는 외국인 친구와 그의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져 함께 처음으로 놀러 간 곳은 북한산이었다. 티브이에서만 들어보던 북한산에 나도 가보게 되다니 그제야 내가 인천에 살고 있구나 실감이 났다. 나는 그 친구들과 북촌 한옥마을, 인천 차이나타운에 함께 놀러 갔다. 그곳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서울이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었다니 너무 신기했다.
내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또 다른 것은 사람들이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부산에서 보던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도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인천에서 만났던 수도권 사람들은 내가 부산에 살면서 들었던 그들에 대한 편견과 매우 비슷했다. 내가 들었던 수도권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깍쟁이이다, 서울에선 눈뜨고 코 베어 간다였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정이 없고 이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직접 인천에 올라와 살다 보니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부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곳에서 함께 살고 있어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 사람들이 부산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친해지지 못한 것은 아니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첫 만남부터 서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울 사람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서울 말투를 쓰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근하며 예의 발랐다. 부산 사람과 확연히 다르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수도권 사람들의 나와 다른 특징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저 부산에서만 평생을 살았던 내게 그들은 내가 처음 접해보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