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의 가족 행사에 어머니는 그저 무대 뒤 스탭이었다

by 전세화

나는 아직 옛날 사상 가득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머니, 아버지 쪽 친척들 모두 부산에 사셨기 때문에 명절이 아니더라도 왕례가 잦았다. 특히 아버지 쪽 친척들은 우리 집과 굉장히 가까워 거의 매주 주말마다 놀러 가고는 했다. 큰 아버지와 작은 고모네는 서로 이웃이기도 했어서 주말마다 멸정처럼 보내고는 했다. 아버지 쪽 사촌들이 7명이나 있는데 나는 그중 가장 막내였다. 큰 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항상 사촌 언니, 오빠들이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었기에 나는 외동이었지만 외동으로서 느끼는 외로움은 전혀 없었다.


친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잘 없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나마 미세하게 남아있다. 친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가장 큰 약국을 하시는 약사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2층에 각각 집이 따로 있는 단독 주택을 갖고 계셨다. 1층에는 큰 아버지 댁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셨고 2층에는 작은 고모네가 따로 살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주택에 살고 계신다. 친할머니는 내가 굉장히 어렸을 때 돌아가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큰 아버지 댁 티브이 옆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이 항 상 벽에 걸려 있었기에 할머니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몇 없는 친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할아버지께서 아프시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할아버지께서 아프시기 전의 유일한 기억은 어느 날 큰아버지 댁 거실에 온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다. 큰 아버지네, 작은 고모네와 우리 가족만이 모였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할아버지께서 가족들을 향해 앉아 계시고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분들은 할아버지를 향해 앉아 그저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에 모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어린 내가 느낄 정도로 공기는 무거웠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할아버지 밖에 없었다. 수많은 가족들은 그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 쪽 가족들은 남성우월주의가 굉장히 강했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왕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할아버지에게 복종하였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혼자이셨고 외로워 보이셨다.

할아버지는 항상 당신 방에서 혼자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그의 식사는 큰 아버지의 부인이신 큰 어머니께서 항상 챙겨 드렸었다. 큰 아버지 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갔기에 나는 할아버지의 식사를 큰 어머니가 챙겨드리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명절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가 있을 때면 모든 가족들이 큰 아버지 댁에 모였다. 제사를 할 때마다 가장 분주한 사람은 여자 어른 분들이었다. 명절이면 우리 가족은 항상 일찍 큰 아버지 댁으로 간다. 도착과 즉시 어머니는 곧바로 주방에 들어가시고 아버지와 나는 거실에 누워 티브이를 봤다. 그렇게 뒹굴다 보면 어느새 거실에도 조리 도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제야 나는 일어나 사촌 언니와 함께 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티브이 보는 것에 지루해진 나는 그제야 일어나 언니 옆에서 재료들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에 담근다. 온 집안이 전 굽는 냄새로 가득해질 때쯤 낮잠을 자고 일어나신 아버지는 구워진 전을 하나씩 집어 드셨다.


어머니는 명절이면 설거지 담당이셨다. 아직 요리를 돕기 전이었던 어린 나는 명절 내내 항상 큰 아버지방을 혼자 차지하였다. 티브이를 보다 나와 어머니가 함께 좋아하는 만화가 나올 때면 어머니께 달려가 함께 보자고 졸랐다. 대부분 어머니는 바쁘다고 거절을 하시거나 나와 함께 큰아버지 방에 가 잠깐동안 함께 티브이를 보셨다.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는 거실에 누워서 편하게 티브이를 보시는 데 왜 어머니께서는 나와 함께 티브이를 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명절이면 나도 자연스럽게 사촌 언니들과 요리 담당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주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제일 바쁘게 요리했던 어머니와 큰 어머니는 왜 제사가 시작돼도 주방에서만 있으셔야 했는지 내가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절을 할 때 왜 그들은 함께 절을 할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이상했다. 모두가 이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화가 났다. 절을 올리지도 못하는데 왜 그들은 열심히 준비하고 제사가 끝나고 나면 뒷정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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