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인 아이는 자라

by 전세화

- 나의 MBTI


사람들은 무리에 속할 때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나와 같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받으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찾는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에 첫 만남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인지 분간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면 나와 같은 무리에 속할 확률이 높고 같은 무리에 속할수록 더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혈액형, 별자리, 성격유형 등을 이용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나와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MBTI가 과학적인지에 대해 논란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 문제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MBTI가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떠나 처음 만난 상대의 대략적인 유형을 파악하기에는 이만큼 편리할 수 없다. 나에게 MBTI는 딱 그 정도이다. 이 사람이 현실주의적인지 이상주의적인지, 감정적인지 이성적인지, 계획적인지 충동적인지를 한 단어로 예상할 수 있다.


당연히 단 4개의 알파벳 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알 수는 없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고작 16가지로 분류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에서 다양한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분명 공통점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을 통계를 이용해 16가지의 큰 유형으로 세분화했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만은 보기 어렵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적어도 한 번씩은 성격유형검사를 하였다. 감정과 사고를 나타내는 세 번째 부분을 제외한 다른 세가지지들은 지금까지도 같은 알파벳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F (감정 feeling)에서 T (사고 thinking)로 바뀌었다. 이 변화가 특이한 이유는 나는 강한 F 성향을 가진 아이였다는 점이다. 매우 감정적이었던 나는 매우 이성적인 어른이 되었다.




- 활발하고 주도적인 아이의 시작


지금도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사람을 더 좋아했었다. 사람들에게 관심과 공감받기를 좋아하던 나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예민헀다. 감정에 예민한 만큼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감정 변화도 잘 알아차렸고 나의 감정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우리 집 환경은 감정적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한 어머니는 굉장히 사고적인 분이셨고 아버지는 평판에 민감하신 분이셨다. 그렇게 부모님은 결과론적인 분들이 되었다. 내가 부모님께 받고 싶었던 감정적 공감과 위로는 이미 끝난 일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모님이 주실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현실 직시였다. 감정에 치우친 나를 대신해 잘잘못을 따져야 할 때에는 명확하게 판단해 주셨고, 오답노트나 앞으로의 방향성이 필요하다면 직관적으로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다.


그때의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부모님께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셨지만 어떻게 줄 수 있는지를 몰라 주지 못하셨던 거였다.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는 감정에 서투르시고 아버지는 현실적 조언에 많은 비중을 두신다. 어쩌다 보니 남들보다 빨리 내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야 했던 지금의 나에게 그들의 가르침은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현재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나의 어머니다.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 덕에 나는 어머니의 직장에서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라는 든든한 버팀목 덕에 나는 유치원 생활에 있어 많은 특혜를 받았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 덕에 다른 아이들과 차별 대우받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셨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뚜렷한 가치관 덕분에 나 또한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갖거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내가 먼저 나서서 남들에게 나는 누구 선생님의 딸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게 모두가 특이한 사례에 적응할 때쯤 나의 다름은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으로 모두에게 스며들었다.


특별 대우는 없었지만 나는 어머니의 존재 덕에 조금 더 활발하고 조금 더 주도적인 아이가 될 수 있었다. 모두에게 나는 선생님의 딸이어서 활발한 아이가 아닌 활발한 아이가 알고 보니 선생님의 딸이게 되었다. 어머니가 있는 유치원은 내가 온전한 F가 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 리더가 되고 싶었던 아이


나만의 낙원이었던 유치원을 졸업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더 많은 아이들이 모이는 초등학교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조금 더 커진 세상에 적응을 한 후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어느 한 곳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냈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의 생활기록부에는 누구보다 사교성이 좋고 활발한 아이라는 글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수학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창의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렇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글 쓰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상을 타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경쟁심이 강했던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어야만 성에 찼다. 다행히도 새로운 것을 즐기고 적응력이 빨랐던 나는 실패보다는 도전의 경험들을 더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끈기가 없었기에 어쩌면 내가 실패를 경험하기 전에 그만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는 리더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경쟁심이 강하고 성격이 급했던 나는 빠른 판단력으로 효율적인 대안을 고안해 내는데 소질이 있었다. 감정적 교류에 능했기에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설득하여 무리에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데에 재능이 있었다. 또한 나는 오지랖이 넓어 다른 사람 일을 내 일인 양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를 좋아했다.


내가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부모님의 또 다른 교육 방침에 있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지만 끈기가 없던 점은 부모님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내가 하고 싶어 하던 것들은 웬만하면 모두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모두 다 시켜주시는 호락호락한 분들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이미 벌려놓은 일들이 많았기에 부모님께서는 내가 하고 싶다고 다 시켜주고 하기 싫다고 다 그만두게 해 줄 순 없었다. 그래서 고안해 내셨던 교육 방침이 '원하는 게 있다면 나를 설득시켜라'였다.


감정에 호소해서 쉽게 허락해 주실 분들이 아니었기에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탄탄한 전략이 필요했다. 사람마다 설득시킬 수 있는 전략은 다르겠지만 나의 부모님은 감정적이기보단 이성적인 설득이 훨씬 유리했다. 이것이 나와 부모님 모두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강한 포부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부모님을 설득하며 다져진 분석력과 효율적인 전략을 짜내는 힘은 나를 리더 덕목에 더욱 부합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냈다.


이렇게 보면 완벽한 리더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나는 초등학교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반장, 부반장을 해보지 못하였다. 초등학교 1학년, 생애 처음으로 나와 동등한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정하는 반장 선거에서 나는 인생 첫 실패의 쓴맛을 봤다.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울음을 꾹 참고 반장이 된 아이에게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부모님께서 나의 실패를 안타까워하실 때도 나는 오히려 내년도 있으니 괜찮다고 센척했다.

그렇게 2학년이 된 나는 다시 한번 반장 선거에 나갔지만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의 실패로 자신감이 하락할 대로 하락한 채 3학년이 된 나는 부반장 선거에 나갔다. 나름대로의 타협점이었던 부반장 선거에서 조차 떨어지니 남들 앞에 서는 게 무서워졌다.




- 나만 모르게 모두가 청소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리더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점점 사람들의 앞에 서기를 두려워했다. 리더가 되길 바랐던 부모님께 실망감을 드리고 싶지 않아 이제는 모두를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게 싫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 실패를 경험했을 때는 나의 실패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로 실패하였을 때는 나의 목표를 낮추었다. 세 번째 실패하였을 때 나는 더 이상 선거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인생 첫 실패는 생각보다 씁쓸했다. 실패를 3번이나 겪었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실패의 아픔을 다시 겪기 무서워 나는 더 이상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고 나를 세뇌했다.


지금도 그때의 정확한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로서 짐작 가는 이유는 사람들은 너무 나서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시절 세상은 특히 여자아이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제시했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 선거의 당선자는 남자아이였고 여자아이는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이 되는 남자아이는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였다. 하지만 부반장이 되는 여자아이는 예쁘고 순종적이었다. 나는 남자도 아니었고 예쁘고 순종적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의 강한 자존심과 급한 성격은 아이들의 호감을 사기 힘들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결국 내게 남는 것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나의 결과 밖에 없었다.


내가 왜 반장이 되지 못했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청소년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 무리 지어 놀았고 서로에게 점점 이성이 되어갔다. 아직 리더가 되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던 나에게 이성은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생겨갈 때에도 나는 여전히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어울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게 더 좋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나만 빼고 모두가 이해하는 사이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 화장을 하고 치마를 줄여 입는 여중생들 속 여전히 아이 같았던 소녀


학교에 가기 위해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모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초등학교와 달리 이젠 옆동네에 사는 아이들도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뛰어서 5분이면 도착했던 초등학교는 걸어서 30분도 넘게 걸리는 거리의 중학교가 되었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매일 아침 봉고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부모님도 아침에 출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늦어서 봉고차를 타지 못 타는 날이면 나는 학교에 지각을 했다. 봉고차가 학교 바로 앞까지 태워다 주면 좋으련만 학교가 산 꼭대기에 있는 덕분에 학교를 바로 밑의 오르막길 앞에는 여기저기서 오는 봉고차들과 수많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편하게 가려고 차를 탔지만 여전히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등산을 해야만 했다. 덕분에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튼실한 종아리를 얻을 수 있었다.


중학교 입학 첫날 아직 공사 중이던 체육관 옆 운동장에서 수많은 학생들은 공식으로 청소년이 되었다. 더 이상 반 뒤편에 없는 사물함과 수업에 따라 교실을 이동해야 하는 것에 적응하는 동시에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다. 여자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벌써 아는 아이들이 많이 줄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갈 수 있는 중학교가 너무 많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도 모두 다른 반이 되면서 나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급선무였다.


처음 보는 아이들로 가득한 새 교실에 모두들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1교시가 끝나고 나는 한 아이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우리 친구 할래?"

너무 당당한 내 모습에 그 아이는 당황해했다. 어느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였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중학교에서 사귄 나의 첫 번째 친구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 함께 같은 중학교로 올라왔다. 운 좋게 나는 그 아이의 친구들과 도도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다른 세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 명의 아이들은 나에게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기쁘거나 힘들거나 항상 나의 편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평생 갈 줄 알았던 초등학교 때의 우정은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한 아이는 인기가 많은 아이들의 무리에 속하였고 한 아이는 치마를 짧게 줄이고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우리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의 우정이 끝난 데는 어떤 이유도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그저 한 살 더 먹으면서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내가 되었다. 순탄하게 마치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아이들이 이성과 외모에 나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친구들을 찾았을 때 나도 나와 같이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지금의 친구들을 찾게 되었을 뿐이었다.


우리들이 함께 할 때면 항상 시끌벅적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여전히 학교 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 벤치에서 올잡(올라가면 못 잡기)을 하고 요즘 좋아하는 연예인,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지치지 않고 하였으며 시답지 않은 장난에도 즐거워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시절 가장 나 다울 수 있었다. 어느새 모두들 청소년으로 훌쩍 자라났지만 그 시절 우리들은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중학생 때는 인기가 많은 아이들과 같은 무리에 속하며 많은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거나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들께 싹싹하게 잘하는 아이들이 항상 다른 아이들 앞에 나섰다. 항상 장기자랑에 나가 춤을 추고 반 아이들의 의견을 조합해 체육대회 반티를 맞추는 그들은 반장, 부반장, 혹은 그들과 친구였다. 나중에 그들은 회장, 부회장 또는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중학생 시절 아이들이 원하는 리더는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이들과 거리가 멀었으며 인기가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에는 흥미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리더에 흥미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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