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는 슈퍼우먼인 줄 알았다
나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어머니다.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 덕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머니의 직업이었기에 어머니는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 주셨다. 내가 어머니께 무언가를 조르기 전에 웬만하면 어머니는 이미 다 들어주셨다. 우리 집에는 항상 나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나의 장난감과 인형들, 바닥과 벽의 낙서들.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가장 잘 이해해 주셨고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지역 축제가 열릴 때면 할아버지 차를 타고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어디든 놀러 갔다. 겨울이면 어머니와 함께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보러 갔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람단이나 검도학원에서 가는 여행과 체험학습에 빠지지 않고 보내 주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 수 없는 게 없었고 한 순간도 재미없었던 적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친척들 등 많은 어른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나의 어린 시절은 행복과 소중한 추억들로 가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어머니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든 다 하며 귀하게 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어머니는 무서운 분이셨다.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셨다. 어머니께서 안 된다고 하신 일은 열에 아홉은 안 된다. 원하는 게 있다면 설득시켜라 라는 교육 방침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안 된다고 마음을 굳히시면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선은 정확했고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았다. 부모님은 예의 없고 거짓말을 하는 것에 엄격하셨다. 그렇게 나는 어딜 가나 인사를 잘하고 거짓말을 못 하는 아이가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잘'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하는 끊임없는 부모님의 바람은 있었지만 내가 지켜야 할 선만 지키면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주셨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나였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갖지 못한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표현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항상 사랑해,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같은 사랑이 묻어나는 말들을 잘만 하시는 데 우리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셨다. 내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주지 못하셨다. 어머니의 다정한 사랑 표현을 항상 바라던 어린아이는 어른이 된 지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 한 번이 없어도 나는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 속 어머니는 언제나 바쁘셨다. 나는 매일 아침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였다. 유치원은 어머니의 일터이자 나의 생활공간이었다. 감정적이고 경쟁심이 많았던 내가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며 일하시는 모습에는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그 나이에 내가 어머니의 일을 이해해서 질투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머니를 다른 모든 아이들도 좋아하는 게 뿌듯했다. 역시 우리 어머니는 모두에게 사랑받을 만큼 완벽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항상 아이들에게 둘러 쌓인 어머니는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내가 보낸 모든 행복한 순간에는 어머니가 함께였다. 어머니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였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슈퍼우먼인 줄 알았다. 어머니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나는 다 믿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당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고 나도 그런 어머니께서 바라는 아이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살고 싶으셨던 어머니는 어느 날 내게 외교관이란 직업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 시절 나의 눈높이에 맞춰진 어머니의 화려한 말솜씨에 넘어가 그날로부터 나의 꿈은 외교관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솜씨 때문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어머니가 바라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의 설명에도 사실 나는 외교관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 여기저기 다니며 "제 꿈은 외교관이에요!"를 외치고 다니는 초등학생에게 사람들은 어이없고 신기해하며 외교관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항상 물어봤다. 그럴 때면 나는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것처럼 "다른 나라를 다니며 우리나라를 알리는 사람이에요"라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한결같이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어머니였을 정도로 어머니는 나의 전부였다.
- 어머니가 하시는 모든 말이 맞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을 좋아했지만 어머니와 친구들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고민도 없이 항상 어머니를 골랐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나는 그 질문에 고민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어머니 다음으로 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한 번도 어머니의 말을 거역한 적 없던 내가 어머니에게 싫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싫다고 대답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나의 전부인 어머니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친구들을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친구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고 친구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 어머니와 논쟁을 하는 나는 해서는 안 될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 주말을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 처음으로 어머니와의 논쟁 끝에 내가 원하는 데로 이뤄졌다. 여태껏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린 적은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셨는 데도 친구와 함께 논적은 없었다. 친구와 놀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시면 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친구와 놀지 않아도 재밌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모두 들어야 행복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내게 모든 걸 주신 어머니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어머니께 드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절대 거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지만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놀라웠다. 친구들과 놀고 집에 온 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대해주셨다. 나에게 실망하시지도 나를 포기하시지도 않고 평소와 같이 나를 대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해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어머니가 하라는 데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였더니 더 행복했다. 처음으로 어머니께서 바라는 아이가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어머니가 나의 전부가 아니어도 나의 세상은 여전하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기 위해 나는 고등학교 3년을 공부로 가득 채웠다. 3년의 시간을 인내했기에 나는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은 내게 맞지 않았다. 내가 잘하지도 못하거니와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던 것을 3년간 해 오면서 나는 내 인생을 책일질 첫 번째 선택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배운 것들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들 동안 내가 했던 모든 노력들이 나를 성인이 아닌 어른으로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니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이 무색하게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시련들이 닥쳐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힘들었고 다시는 돌아기기 싫었다. 그 시절은 내가 처음으로 어른의 인생을 배웠던 시간이었다.
현실에서 진정한 사회에 대해 배우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힘을 기르며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사람들로 나를 이뤄왔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내 인생에 내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미국에 오기 전, 내가 인천에 혼자 살면서 향수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단숨에 내 삶의 전부를 차지했다. 함께한 시간의 숫자는 너무나도 짧았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가 나의 모든 것이 되어갈수록 어머니의 자리는 점점 좁아져갔다. 그 친구가 나의 전부가 되었을 때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어도 살 수 있구나'
커갈수록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어머니의 자리는 점점 작아져갔다. 인지하지는 못하였어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어도, 나를 이루는 게 어머니가 아니어도, 나는 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 친구는 내게 깨닫게 해 주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진짜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나로 온전히 이루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갑자기 생겨난 너무나 큰 어머니의 빈자리에 채워진 바람은 공허했지만 시원했다.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선하고 설레는 바람이었다.
- 어머니를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까지
미국에 간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온 여름이었다. 향수병으로 지칠 대로 지쳤던 내게 한국은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의 디데이를 휴대폰 배경화면에 띄워두고 매일매일을 볼 정도로 내게 한국은 간절했다. 그렇게 원하던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부모님께 짜증을 냈다. 장장 15시간 동안 비행기 좌석에 구겨져 있었던 나를 데리러 부산에서 5시간이 넘게 운전하신 부모님께서 길을 잘 못 들어 나는 공항 앞에서 그들은 1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공항에 오신다고 아침부터 준비하신 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건 짜증을 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겨우 부모님을 만나 여전히 툴툴 대는 내게 달려와 보고 싶었다고 안아주시는 어머니를 보자 그제야 뇌가 정상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짜증을 내던 나에게 화난 기색 하나 없이 차에 탄 내게 반가움과 설렘을 전하셨다. 집이었다. 남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무한히 친절한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들. 이제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완벽한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진짜 내 집에 돌아왔지만 어느 것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나만 빼고 모두가 익숙해져 있었다. 집이 아니어서 외로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오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그런 이상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있는 어머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게 화가 났다. 나의 국적, 내가 살던 집, 나의 가족들에게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외롭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내가 없는 사이 모든 것이 바뀌었고 바뀐 세상에 나를 뺀 모두가 익숙한 게 화가 났다. 더 이상 아무것도 걱정하기 싫어서 집에 왔는데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사실이 화가 났다.
행복하고 편안하게 쉬다가 다시 미국을 돌아갈 것이란 나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싸웠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나처럼 이번 인생이 처음인 그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은 나의 부모님이기 이전에 나와 같은 한 사람이라는 말은 내가 깨우치기 전부터 들어왔던 익숙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듣기만 해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이미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게 슈퍼우먼이었던 어머니는 평범한 어른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를 어른으로 만드신 장본인이었지만 당신의 인생은 여전히 서툴고 두려운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나와 같은 어른이었다.
어머니는 나와 동등한 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게 둘도 없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