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동안 하고 싶은 직업은 작가이다. 중학생 때 본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를 보고 남녀노소 모두가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영화를 통해 사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영화 스토리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낸 나의 꿈은 애니메이션 스토리 작가였다.
자연스레 영화 영상학을 전공으로 하여 대학교에서 공부를 한 나는 꿈을 바꿔야 했다. 애니메이션 스토리 작가라는 직업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애니메이터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자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스토리를 생각해 내는 작가이기도 하였다.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대본 작가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대게 모든 작업들은 그들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림에 별로 소질도 없고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는 나에게 애니메이터는 졸업 후 내가 당장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겨우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다시 대학에 돌아가 공부를 하자니 그림을 그리고 프로그램을 다뤄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평생하고 하고 싶은 만큼 좋아하지도 열정이 있지도 않았다.
곧 다가올 졸업 후 다닐 직장을 얼른 찾아야 했던 나에게는 두루뭉술한 꿈보다는 뚜렷한 직업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찾은 나의 꿈은 대본 작가였다. 내가 배운 전공을 살리면서 내가 꿈꿨던 남녀노소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서 그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려면 영화만 한 게 없었기에 영화 대본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꿈은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졸업 후 1년 동안 미국에 남아 일을 하려면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대본 작가들은 프리랜서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닌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했다.
글을 쓰는 것 이외에 내가 배웠던 것들 중에 그나마 흥미가 있었던 편집 쪽 직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졸업 후 취업을 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마지막 학기를 동안 공부를 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인턴 자리를 알아보았다. 열심히 알아보았음에도 끝끝내 나는 인턴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계속 편집자 직업을 찾아다녔다. 계획을 하면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결국 내가 갖게 된 첫 번째 직업은 카메라기자였다. 전공과 관련된 다른 직업들 중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카메라감독이 된 데다가 언론사에서 일하게 되다니. 인생은 역시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첫 직장에 적응하고 나니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갈림길 앞에 놓였다. 미국에 남아 언젠가 이루게 될 나의 꿈을 위해 지금 하고 싶지 않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9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직업을 찾는 것, 나는 그 둘 중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처음 나의 고민을 들으신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 얼마나 고생해서 온 미국인데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소리는 나약했고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것을 생각하는 모습은 부정적이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직장을 구한 기쁨을 미처 다 느끼지도 못 한채 나에게 비자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직장을 알아보며 몇 달을 끙끙 앓았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과 수모를 견뎌냈는데 한국으로 쫓겨나야 하는 나의 신세에 화가 나기도 전에 나는 나의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꿈을 찾아 미국에 온 내가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를 미래의 꿈을 위해 기약 없이 수많은 현재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그 오랜 기간 외로운 땅에 혼자 남겨질 날들이 두려웠다.
꿈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돌아가더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꿈에 다다를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꿈만큼 소중한 현재를 확답 없는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게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투자한 나의 현재들은 미래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질까 봐 그렇게 지난날들을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지금껏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타협하며 돌고 돌아다가 나중엔 진짜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내가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여기서 얼마나 더 이방인으로서 살아야 꿈의 발끝이라도 쫓아갈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나긴 고민 끝에 어머니께 걸었던 전화는 어머니를 화를 누그러트리는데 다 사용해 버렸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어머니께 털어놓은 후 마주한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반응에 어머니께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내게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내가 한국을 돌아오는 게 진짜 맞는 같다면 걱정 말고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꿈이 작가라면 지금부터라도 공모전에 도전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내 꿈이 작가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서부터 내가 아버지께 항상 들었던 말이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내게 지금부터 습작을 써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은 할 수 없는 이유들을 늘어놓았다.
어머니께 처음으로 아버지께 항상 듣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지금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찾았다. 그 이유들이 지금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그것들은 그저 변명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변명거리를 찾고 그렇게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는 매일 학교에 가고 과제를 하며 밤을 새야 하지도 않는데 아직도 꿈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꿈을 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바로 평가받기 위해 글을 쓰자니 또다시 두려움들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고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던 글쓰기가 너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으면 어떡하지. 내가 바라던 꿈을 이루기 위한 재능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하며 평생을 살아야 하지. 그렇게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며 지레 겁을 먹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미국에 머물 수 있는 날은 9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와 노력들이 허투루 돌아가지 않으려면 무엇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직장에 이력서를 내기 위해 조건을 찾아보며 치를 떨었던 경력을 하루라도 더 많이 쌓으려면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지금 도전할 수 있는 공모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꿈에 가까워지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끈기긴 없는 내가 이렇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음에 스스로가 너무 놀라 언제 그만두게 될지 무섭다. 그래서 나에게 이 도전은 매우 소중하다.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져도 될 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나의 소재들은 상업적 가치가 충분한지 냉정하게 평가받게 되는 게 두렵지만 또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마음이 설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불안한 지금의 나를 온전히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내 꿈을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을 채우기 위해, 잃어버릴뻔한 되고 싶은 나 자신과 나의 꿈을 잊지 않기 위해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면서 다시 나의 꿈을 찾았다. 되고 싶은 나 자신과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을. 아직 나는 나의 꿈과는 거리가 멀어 이런 나의 모습을 사람들 어게 보이기 쪽팔려 많이도 도망 다녀왔다. 이렇게 계속해서 꿈으로부터 도망 다니다, 현재를 책임지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이리저리 돌아가다 나중에는 내가 나의 꿈을 잃어버게 될까 봐 무서워졌다. 지금의 초라한 나의 모습을 꾸밈없이 기록하자. 아무것도 없지만 그 누구보다 강하게 열망하고 있는 나의 꿈을 그렇게 꿈을 향해 반짝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