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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도 수치스러운 내 D컵 가슴

여성인 내 몸 사랑하기

by 이지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학창 시절 나는 굉장한 글래머였다.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진짜로 엄청났었다.

진짜다.


글래머의 슬픔을 아는가?

볼륨 없는 건 더 슬프다고?

글쎄.. 정말 그럴까?


2차 성징이 시작되던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한도 끝도 없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는 내 가슴을 보고는 둔하고 미련해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내 가슴이 부끄러워졌다.

(뇌로 가야할 세포들이 가슴으로 다 가버렸어. ㅜㅡㅠ)


아이들이 얼마나 순진한지 아는가?

"엄마, 글래머러스한 게 얼마나 축복인데요. 여성의 여성스러움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저에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심지 마시길 바라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난 왜 이모양 일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이렇게 중매인 '엄마'의 소개로 나는 여자인 내 몸과 첫 만남을 가졌다.

첫인상부터 엇나가 영 잘 지내기 힘든 관계로 말이지.


나는 어떻게든 가슴이 좀 작아 보이려고 등을 잔뜩 구부리고 다녔다.

그렇다. 나는 글래머 꼽추가 된 것이다!


가슴의 반란이었을까?

이런 내 속도 모르고 가슴은 C컵을 훌쩍 지나 D컵에서도 좌우 녀석들이 흘러넘쳐 치고받고 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 가슴이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난 가슴이 출렁이는 것이 부끄러워 뛸 때마다 팔로 슬쩍 부여잡아야 했다.

육상과 줄넘기가 제일 싫었다.

책상을 끌어당길 때마다 책상 위에 얹어야 하는 가슴이 정말 바보같이 느껴졌다.


브래지어는 늘 작았지만 그냥 엄마가 주는 대로 입었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작은 속옷을 입다 보면 가슴이 작아질지도?

중국 여인들은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칭칭 동여맸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내가 탄 [여자]행 기차는 [비극]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속절없이 달려갔다.


나는 내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나의 일부분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낳고 몇 년 뒤 어느 날

옛날의 영광을 뒤로하고 한껏 풀이 죽은 가슴에서 몽우리 같은 것이 만져졌다.

아뿔싸!


밥풀도 욕을 먹으면 누룩이 되지 못하고 곰팡이가 핀다는데

내가 그렇게도 미워했더니 결국 올 것이 왔구나..


부인과에 예약을 하고 검진을 받기까지 며칠간 나는 내 몸을 미워한 것에 대한 후회를 참 많이 했다.


다행히 가슴에 멍울은 지방종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지방덩어리 덕분에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가 비춰주었던 거울을 그대로 내 것으로 물려받아

나조차 나를 너무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 몸은 내 것이고 내가 사랑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을 꼬시는데 큰 공을 세우고

아이에게 모유를 아낌없이 내어준 내 가슴아!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래!! 나는 여자다.

나는 이제 내가 가진 여성의 몸을 사랑하기로 했다.

작은게 좋냐 큰게 좋냐의 문제를 떠나서

그냥 나니까.

이게 내 몸이니까.

우리 딸도 나를 닮았는지 발육이 남다르다.

딸에게 넌지시 '가슴이 나오니 기분이 어때?'하고 물으니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여자가 되고 있는 거지"


다행이다.

내 딸은 행복한 글래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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