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밉지 않은 나
06화
예쁘고도 수치스러운 내 D컵 가슴
여성인 내 몸 사랑하기
by
이지은
Apr 15. 2021
아래로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학창 시절 나는 굉장한 글래머였다.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진짜로 엄청났었다.
진짜다.
글래머의 슬픔을 아는가?
볼륨 없는 건 더 슬프다고?
글쎄.. 정말 그럴까?
2차 성징이 시작되던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한도 끝도 없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는 내 가슴을 보고는 둔하고 미련해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내 가슴이 부끄러워졌다
.
(뇌로 가야할 세포들이 가슴으로 다 가버렸어. ㅜㅡㅠ)
아이들이 얼마나 순진한지 아는가?
"엄마, 글래머러스한 게 얼마나 축복인데요. 여성의 여성스러움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저에게 부정적인 자아상을 심지 마시길 바라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난 왜 이모양 일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이렇게 중매인 '엄마'의 소개로 나는 여자인 내 몸과 첫 만남을 가졌다.
첫인상부터 엇나가 영 잘 지내기 힘든 관계로 말이지.
나는 어떻게든 가슴이 좀 작아 보이려고 등을 잔뜩 구부리고 다녔다.
그렇다. 나는
글래머
꼽추가 된 것이다!
가슴의 반란이었을까?
이런 내 속도 모르고 가슴은 C컵을 훌쩍 지나 D컵에서도 좌우 녀석들이 흘러넘쳐 치고받고 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 가슴이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난 가슴이 출렁이는 것이 부끄러워 뛸 때마다 팔로 슬쩍 부여잡아야 했다.
육상과 줄넘기가 제일 싫었다.
책상을 끌어당길 때마다 책상 위에 얹어야 하는 가슴이 정말 바보같이 느껴졌다.
브래지어는 늘 작았지만 그냥 엄마가 주는 대로 입었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작은 속옷을 입다 보면 가슴이 작아질지도?
중국 여인들은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칭칭 동여맸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내가 탄 [여자]행 기차는 [비극]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속절없이 달려갔다.
나는 내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나의 일부분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낳고 몇 년 뒤 어느 날
옛날의 영광을 뒤로하고 한껏 풀이 죽은 가슴에서 몽우리 같은 것이 만져졌다.
아뿔싸!
밥풀도 욕을 먹으면 누룩이 되지 못하고 곰팡이가 핀다는데
내가 그렇게도 미워했더니 결국 올 것이 왔구나..
부인과에 예약을 하고 검진을 받기까지 며칠간 나는 내 몸을 미워한 것에 대한 후회를 참 많이 했다.
다행히 가슴에 멍울은 지방종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지방덩어리 덕분에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가 비춰주었던 거울을 그대로 내 것으로 물려받아
나조차 나를 너무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 몸은 내 것이고 내가 사랑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을 꼬시는데 큰 공을 세우고
아이에게 모유를 아낌없이 내어준 내 가슴아!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래!! 나는 여자다.
나는 이제 내가 가진 여성의 몸을 사랑하기로 했다.
작은게 좋냐 큰게 좋냐의 문제를 떠나서
그냥 나니까.
이게 내 몸이니까.
우리 딸도 나를 닮았는지 발육이 남다르다.
딸에게 넌지시 '가슴이 나오니 기분이 어때?'하고 물으니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여자가 되고 있는 거지"
다행이다.
내 딸은 행복한 글래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
written_by_leejieun
keyword
여성
감성에세이
심리
Brunch Book
밉지 않은 나
04
누르지마! [기쁨버튼]
05
남자보다 더 남자답게, 아니 졸라 남자답게
06
예쁘고도 수치스러운 내 D컵 가슴
07
엄마 편 vs 아빠 편
08
축하받지 못한 첫 생리
밉지 않은 나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9화)
336
댓글
88
댓글
88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지은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푸름이교육연구소
직업
상담사
허들을 넘는 여자들
저자
순전히 노력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된 엄마. 그 우여곡절의 여정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구독자
498
제안하기
구독
이전 05화
남자보다 더 남자답게, 아니 졸라 남자답게
엄마 편 vs 아빠 편
다음 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