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이는 아무나 안아도 방긋방긋 웃는다던데, 우리 딸아이는 갓난쟁이부터 엄마만 찾았다. 눈도 제대로 못뜨면서 아빠가 안으면 귀신같이 알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맡기고 쉬고 싶었던 나는 짜증이 났다. 남편은 냄세 때문인가 싶어 나의 원피스 수유복을 입고 안아보기까지 하면서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가 아빠를 거부할 때마다 남편은 울상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나는 남편이 얄미웠다.
'좌절해야하는건 나지.'
'아이가 당신을 거부한 덕에 당신은 쉴 수 있잖아.'
'당신은 나보다 더 힘들어할 자격이 없어.'
그만큼 스트레스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낳고 몇 개월만에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하던 날. 말이 거창해서 외출이지 그냥 집앞 슈퍼를 다녀오려는 계획이었다. 주말이라 집에 있던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왔다. 매단거 없이 혼자 걷는 가벼움이 너무 좋았다. 그 작은 자유를 음미하며 걷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니 50미터쯤 뒤에서 남편이 아기띠를 하고 살금살금 따라오고 있었다. 스파이처럼.
혼자 쉬지도 못하게 왜 쫒아오냐고 화를 내자 남편은 아이가 갑자기 울어버릴까봐 걱정이 되서 따라나왔다고 했다. 가까이 가지 않을테니 당신 편하게 장보라고 말하며 멀찍이 떨어지는 남편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던지... 차마 내치지는 못하고 멀리서 쫒아다니게 두었지만 더이상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첫 외출은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났다.
나도 육아가 참 힘들긴 했지만 남편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을거다. 한번 울음이 터진 아이는 엄마만 찾지.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떻게 달래야할지는 모르겠지. 부인은 늘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지. 그렇다고 산후우울증으로 고생중인 부인이랑 싸울수도 없고... 그렇게 남편은 우리집에서 오랜시간 육아 못난이로 지냈다.
육아가 힘들긴 하지만 '육아 1인자'의 삶에는 담콤함도 있다. 남편에게 훈수를 두고 지적할 때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되는 기분이 든다. 나도 정작 잘 못하는 것들이 많지만 적어도 훈수를 두는 순간만큼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편과 아이 사이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류가 흐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판사노릇도 할 수 있다. 당연히 엄마는 아이 편이다. 아이도 엄마편이다. 둘이 똘똘 뭉치면 무적이나 다름없다. 내 평생 느껴보지 못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럴때 만큼은 나의 오랜 고질병인 소외감과 외로움이 잦아드는것 같았다.
나는 아이와 아빠가 갈등을 겪을 때 오해를 풀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빠가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겪어가며 관계를 레벨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럴만큼 내가 남편을 믿지도 않았고 중요한 위치를 내줄 생각도 없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큰 해를 입일것마냥 걱정을 하며 아이를 보호하려 했지만 지나고보니 내 남편은 아이를 단 한번도 때린 적이 없다. 아이의 물건을 부순적도 없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적도 없다. 정작 이런 폭력적인 행동을 다 내가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나를 비난하기보다 조용히 기다려주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남편안에 아주 작은 분노, 조그만 부대낌만 감지해도 아이를 데리고 도망갔다. 내 안의 분노가 커서 남편에게도 그런 분노가 있을거라 지래 짐작한 것이다. 남편의 사랑은 보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 내 어린시절을 투사했다.
남편은 나와 아이 사이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어 힘들다고 꾸준히 이야기 해왔다. 육아에 지친 나는 늘 "그래서 뭐 어쩌라고!" 로 대응해왔지만 이제 남편의 외로움이 조금은 보인다.
나는 남편에게 멋진 아빠가 될 기회를 얼마나 주었던가? 모든 순간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나? 내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만큼 남편은 얼마나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을까? 내가 바랬던것 처럼 남편도 따뜻한 인정의 말과 편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 나는 주말 외출이 잦아졌다. 내가 외출을 하는 날이면 남편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사주고 워터파크같은 곳에도 데리고 갔다 온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오면 내가 퇴근을 해도 아이는 한동안 나보다 아빠를 찾는다.
"아빠! 이거봐. 내가 보스를 깼어!"
"아빠! 내 베게 어디있어?"
참 신기하다.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관계가 깊어진다는건 불변의 진리인것 같다. 내가 아이에게 1등인 이유는 아이와 울고 웃으며 맘껏 부대끼는 그 많은 시간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아이 옆에 있을 수 있었던건 그 시간동안 열심히 돈 벌어다 준 남편 덕이다.
아이는 아빠가 들인 그 정성에도 불구하고 하루 이틀만에 금새 다시 엄마를 찾고는 하지만 그럼 아빠는 또 다음 주말을 기약한다.
늘 만년 2등인 아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우리 남편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