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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Oct 12. 2023

내면아이 치유 일기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양육에 관한 책을 아무리 읽어도 실천은 늘 쉽지 않다. 나도 아이의 부정적 표현을 피하지 말고 갈등의 순간을 교육의 기회로 삼으라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봐서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아이가 징징거릴 때 공감해주지 못하고 방을 박차고 나간적이 있고 아이가 때를 쓸때 아이 장난감을 던져 박살낸 적이 있다. 울며 잠든 아이의 머리 맡에서 가슴치며 후회한 적은 수없이 많다. 그럼엗호 다음 날이면 또다시 똑같은 순간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곤했다. 그래서 육아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이렇게 부글거리는 감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아이와 싸우게 되는 것은 바로 부모의 마음속에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면아이는 유년 시절에 겪은 상처로 인해 내면에 남아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말한다. 


모든 아이는 정해진 발달과정을 겪으며 자란다. 발달 과정에 따라 스킨쉽의 욕구, 보호받고싶은 욕구, 소유욕, 인정욕구, 독립의 욕구 등등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채워야 하는 욕구가 좌절되어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몸은 성인으로 자란다해도 마음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 마음이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뒤집어진 아이에게 분노하지 말고 차분하게 훈육하라고 조언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작 아이가 울고불며 바닥에서 드러누워 떼를 쓰는 순간에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양육 전문가의 말들은 다 잊혀지고 부모는 그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장난감을 사줘버리거나 화를 내서 아이의 감정 표현을 억눌러버린다.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올라오는 순간이다. 


부모가 어린 시절 때쓰고 징징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서 모든 욕구를 삼킬수 밖에 없었다면 그 부모의 내면에는 감정을 억누른 억울한 내면아이가 존재한다. 그 아이는 욕구를 참으며 불만을 표현도 못했으니 분노와 슬픔이 가득할것이다. 자신의 욕구가 정당하다는 감각이 없을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욕구는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되고 욕구가 좌절됐다고 화를 내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는 강한 신념이 무의식에 있다. 그렇게 믿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자신의 아이가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며 울며 떼를 쓴다. 너무나 당연한 아이다운 행동이지만 부모는 그 순간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건드려진다. 당연히 자신의 감정이 요동쳐 아이의 감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랑으로 훈육을 할 수가 없다. 부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격한 감정이 묻어나오기에 아이는 긴장해서 벌벌 떨거나 오히려 더 떼를쓰며 반항한다. 그러면 부모의 감정은 더 격해지고 아이보다 부모가 더 어린 아이처럼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아이다운 자연스러운 욕구다. 어짜피 장난감을 사줄게 아니라면 아이가 상실의 아픈 마음을 표현할 수는 있게 해주고 위로해줘야 한다. 하지만 내면아이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아예 표현자체를 막아버리게 된다. 자신이 어렸을 때 참아 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욕구를 느끼는 것 자체를 억압하고 괜찮은 척 하기를 무의식적으로 강요한다. 이렇게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양육받은대로 자신의 아이에게도 하기 때문에 내면아이의 상처는 대물림 된다. 맞고 자란 사람이 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오고 방치되어 자란 사람이 아이를 방치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런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를 마주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을 대면이라고 한다. 맞고 자란 사람이라면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을 좀 때려도 된다’는 신념에 맞서서 신체적인 폭력을 당했을 때의 좌절감과 비참함을 만나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인정해야 해야 자식에게 같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서 때린거야! 그러니 너도 좀 맞아봐!’ 라고 외치며 억울함과 슬픔에 뒤범벅되어 울부짓고 있는 내면아이의 아픔을 만나 통과하고  새로운 맥락으로 다시 교정해야 한다. 이 과정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눈물을 흘리고 땅을 치면서 진행된다. 누구나 자신의 자식에게 사랑을 물려주고 싶다. 때리는 것은 사랑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자식을 때리는 것을 멈출 방법이 없다. 유년시절의 상처를 풀어내고 나면 맥락이 더 커져 자신의 부모님도 스스로의 내면아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 뿐임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감정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짜 사랑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양육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간이다. 대면없이 노력으로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감정이 요동쳐서 의지대로 행동할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행동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반응하며 사는 사람이 된다. 억지로 분노를 참아보려고 해도 만분의 일초로 올라오는 분노를 아이는 공기로 표정으로 다 느끼고는 “엄마 화났어?” 하고 물어본다.상처를 정화하려면 일단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자극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면아이 치유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면아이 치유일기는 분노일기를 내면아이 관점에서 조금 더 확장한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내면아이 치유일기를 적어보자.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이런 감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자기 자신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겠지만 이런 시간을 거치면서 차츰 자신도 몰랐던 나를 찾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욕구와 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처음에는 자각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도 있지만 하면 할수록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이 되어 나중에는 글로 굳이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각이 일어날 정도로 쉬워진다. 내면아이 치유 일기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쓰면 된다.


1단계 사건 : 하루 중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을 육하원칙에 따라 객관적으로 적어보자. 감정이 촉발된 대화가 있다면 그 문장도 함께 적어보자.


2단계 감정 :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적어보자.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래의 감정 목록을 보고 참고해보자. 


3단계 자각 : 이런 감정이 들었던 과거의 상처지점을 찾아보자. 상황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치유가 일어날수록 자각하는 시기가 더 유년 시절로 거슬로 올라갈수도 있다.


4단계 억압해제 : 어린시절 나약했던 그 아이는 하지 못했던 감정 표현을 글로 마음껏 표현해 보자. 절제하려는 습관이 많은 사람은 과장해서 표현해보면 좋다. 여건이 된다면 몽둥이로 베게를 두드리며 하고싶었던 말을 소리쳐보자. 비명을 질러도 좋고 통곡이 나오면 더 좋다. 감정은 에너지다. 풀어내면 줄어든다. 

(3단계와 4단계 순서는 바뀌어도 괜찮다)


5단계 정화 : 상처받은 아이에게 성인이 된 내가 주고 싶은 위로와 사랑을 말로 표현해보자. 그 아이는 어떤 말을 듣고 싶었을까? 그 아이는 어떤 말을 들으면 깊은 상처가 치유 될까? 그 아이는 그 사랑을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이제 그 사랑을 타인에게 받기위해 애쓰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주기로 선택한다.


6단계 맥락 : 이제 사건을 다시 바라보자. 어떤 맥락이 떠오르는가? 나의 어린아이의 마음은 무엇을 바랬고 상대방은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앞으로는 또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적어보자.


7단계 칭찬 : 이 모든 과정을 잘 겪어낸 나에게 칭찬과 응원의 말을 해주자.


Example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아이가 영화를 보러 간다길래 영화 티켓값을 줬어. 그런데 친구   엄마가 이미 결재를 다 했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래서 돈을 다시 달라고 했더니 아이가 계속 돈을   그냥 가지면 안되냐며 졸랐다.
그때의 감정은 어땠나?

화가 났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갔다. 용돈을 충분히 주고 있는데도 그러니 이기적이고 욕심쟁이처럼 보였다. 옆에있던 아이 친구가 어떻게 볼지 창피하고 규칙없이 끌려다니는 엄마로 보일까봐 걱정됐다.
이 감정은 어린시절의 무엇을 떠올리게 하나?

내 것이 없이 다 양보해야 했던 내가 떠오른다. 동생과 친구에게 양보하며 내것을 지키지 못했었다. 돈을 아이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이제 내 것을 지킬거야. 라며 씩씩거리는 아이가 느껴진다.
 어린 너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나? 맘껏 표현해보자!

내꺼야! 뺏어가는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건드리지마!
왜 니들만 다 가져?!
이제 내껀 내가 지킬거야!
어린 너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은가?

억울했겠다. 고생했어. 이제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겨 지키지 않아도 돼. 어른인 내가 어른의 방법으로 널 지켜줄게. 충분히 가질 수 있어.
이제 오늘일이 어떻게 느껴지나? 다음에는 어떻게 해볼까?

아이는 이미 노는데 쓰라고 받은 돈이기에 자기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을거야. 게다가 사고 싶은 게임이 있어서 더 강하게 주장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어. 딸아이가 어른인 나에게 뭔가를 뺏을 수는 없어. 내가 오히려 나의 상처를 아이에게 대물림 할뻔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자신에게 칭친과 응원의 한마디를 해주자!

화라는 감정을 깊이 들여다본 나를 칭찬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의 상처를 대면하는 성장의 시간이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에게 스승으로온다고 말한다. 양육은 기쁨도 있지만 당연히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다. 하지만 그 모든 힘든 순간에 아이도 온힘을 다해 우리를 믿고 우리의 품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육아는 두 사람의 치열하고 거룩한 성장의 시간이다. 아이는 엄마를 절대 정죄하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 아이에게 우리는 세상의 전부다. 그만큼 엄청난 존재인 당신을 응원한다. 당신이 아이와 함께 상처를 꼭 치유하고 행복한 육아를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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