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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인 줄 알았는데 로봇이었어

by 이지은

"엄마 화 안 났어~"

"엄마 운 거 아니야~ 하품한 거야!"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 앞에서 만큼은 부처같이 인자한 미소만 짓고 싶었다.

어디 미소짓는 가면 없나요?

그런거 있으면 제 얼굴에 좀 씌워주세요!


두려움, 슬픔, 분노, 기쁨 등 수많은 감정중에서 오직 기쁨만을 주고 싶었다.

내 아이가 하루종일 웃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어! 웃으라고! 이렇게까지 해주는데도 안웃어?)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보여준 나와 아이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 볼살도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완전히 썩어있는 내 표정이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정

온 세상 근심, 걱정을 다 끌어안은 딱 우리 엄마 표정이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감정을 억압하면 슬픔과 분노뿐만 아니라 기쁨도 함께 억압된다고 한다.

'슬픔이나 화는 느끼고 싶지 않아. 하지만 기쁨은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

이것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냥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무뎌져 로봇과 같이 삶의 생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울면 뭘 잘했다고 우냐며 한대,

어디서 감히 어른 앞에서 골을 내냐며 한대,

겁나긴 뭐가 겁나냐면서 등짝 한대,

실없다 방정맞다며 한대..


차곡차곡 실~하게 쌓아 올린 한대들이 모여 로봇 한대가 되었나 보다.

하지만 아이의 생생한 감정 표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영 불편했다.

아이가 울 때도 화낼 때도 겁낼 때도 웃을 때도

'왜 저렇게 유난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면 배운 대로 토닥토닥해주려고 했지만 내 손에서는 자꾸 힘이 들어갔다.

(손아 그 힘 빼! 이건 등짝 스매싱이야~!!)


그러던 어느 날 요리하던 중 손이 미끄러져 프라이팬이 손잡이부터 수직으로 엄지발가락으로 떨어졌다.

만화 같은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났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쓰~~ 읍~~!" 소리를 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통을 참아내기 시작하려던 찰나 이제 그만 참고 싶다는 마음이 훅 들어왔다.


'나도 아이처럼 울고 싶다'


순간 "으앙~" 하며 아이처럼 소리 내 울어버렸다.

내 생전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펑펑 우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도 놀랐는지 엄마 괜찮아? 하며 걱정을 해주었다.

남편도 달려왔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자

발가락의 통증이 잦아들었다.

바보 같은 실수를 한 것에 대해서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게도 사우나 한바탕 한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와 남편이 웃고 있었다.

감정을 표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날부터 내 별명이 찔찔이가 되었을 뿐이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울었고 아이는 그때마다 위로도 해주고 놀리기도 하며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렇게 깔깔거리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하며 아이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보니 차츰 아이의 생생한 감정표현이 덜 불편해졌다.


지금도 아이는 거미 한 마리에 비명을 꺅! 지르다가 갑자기 까르르 웃고 있다. 그러다가 어디 부딪히기라도 하면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한차례 우는 소리를 꼭 한다.


맞다.

우리 딸은 살아있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이다.


유난 좀 떨며 살아야겠다.


아프면 울고

겁나면 벌벌 떨면서

화나면 화도 내고

기쁘면 까르르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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