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가족과 해변에 간 날이었다.
우리 집 아이와 그 집 아이, 동갑인 꼬맹이 둘이서 해변에서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주우며 놀고 있었다.
일명 보물 찾기라는 건데
조개껍데기 같은 것을 주워와서는
"이거 내가 주운 거다! 멋지지?" 하면
다른 아이는 병뚜껑 같은 것을 주어와서는
"이거 봐! 이게 더 멋지지?!" 하는 놀이였다.
도대체 조개껍데기보다 병뚜껑이 왜 더 멋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상대방 아이는 감탄의 눈초리로 그 병뚜껑을 한참 쳐다보다가 더 멋진 쓰레기 보물을 찾아 나서곤 했다.
대체로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많았는데
아이들 눈에는 그것들이 보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꼬맹이들의 승부욕을 아는가?
타짜가 와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갈 그 치열한 세계를 말이다.
자기만 카드 몇 장을 더 달라고 주장하는 패기.
마피아 놀이에서 실눈을 뜨고야 마는 얍삽함을 넘어선 그 간절함.
그들은 결코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 룰을 바꾸고 시간도 돌리는 게 꼬맹이들이다.
꼬맹이들은 지면 안 된다.
그것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문제는 꼬맹이와 꼬맹이가 경쟁이 붙었을 때인데
그때는 세계 평화는 물 건너간 거다.
그날의 분위기도 딱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옆집 아이가 더 멋진 보물을 찾으러 갔다가
한참만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망가진 장난감이 들려있었다.
천 원짜리 뽑기 같은 데서 나올법한
아주 작은 로봇 장난감이었는데
팔 하나는 어디 갔는지 없었다.
알록달록한 로봇을 보자 내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평화는 끝났다.
우리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장난감을 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당연히 주지 않았고
우리 아이는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로도 달래지지가 않았다.
울다 지쳐 축져진 아이를 등에 엎고 돌아오는데
까무룩 기댄 아이의 숨소리엔 여전히 물기가 가득했다.
괜히 내 마음도 아팠다.
똑같은 장난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했다.
더 이상 달랠말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내 마음을 주절주절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저걸 주웠다면.. 10개를 주워도 10개 다 우리 딸 줬을 거야.."
"........ 정말?"
"응 엄마는 할 수만 있다면 별도 달도 따서 다 우리 딸 주고 싶어"
"... 전부 다?"
"응 전부 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밝아졌다.
그리고 잠시 뒤에 이제 자기가 걷겠다며 내려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와 다시 뛰어놀았다.
나는 재벌이 아니기에 아이에게 모든 것을 줄 수는 없다.
아니.. 재벌이라도 자식에게 줄 수 없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상실을 겪어야만 하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이 꼭 마음의 결핍으로 남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엄마가 널 사랑한다고
엄마도 너에게 다 주고 싶다고
그저 지금 여건이 안될 뿐
너는 그것을 충분히 가질만한 귀한 존재라고..
이런 말을 들은 아이라면
상실감을 툭툭 털고 금방 일어날 것이다.
그 빈 공간을 엄마의 사랑이 따뜻하게 채워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든든한 마음으로 가던 길을 마저 갈 것이다.
반면 유년시절 나는 엄마에게 돈을 받을 때마다
집안 형편 타령을 한참을 들어야 했다.
돈을 안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돈에는 엄마의 한숨이 그득그득 얹어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반드시 더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다 때려치우고 맘 편히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휘청거렸다.
그 돈들이 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나에게 고급 브랜드 원피스를 사 입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그 옷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참 가난했던 것이다.
오히려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은 뒤
싸구려 티셔츠에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사는 지금
어린 내 딸이 엄마 사랑해~라고 말해줄 때
엄마가 트와이스보다 이쁘다고 말해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느낌.
정말 부자가 된 기분 말이다.
물질적 풍요와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받을 때 부자가 된다.
나는 비록 평범한 형편의 엄마지만
내 아이만큼은 우주 갑부로 키우려 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또 표현한다.
백만금을 줘도 안 바꿀 내 딸
너는 엄마의 보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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