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밉지 않은 나
20화
성욕 가출사건
부부관계
by
이지은
Jul 29. 2021
아래로
남편은 내가 굉장히 섹시한 여자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성적 판타지에 나오는 그런 여성
말이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가슴도 컸던 데다가(과거형 주의)
반항하고 싶은 마음을 이성교제 쪽으로 풀어냈으니
충분히 그래 보였을 것이다.
윗가슴이 훤이 들여다 보이는 파인 옷을 입고 다니고
워터파크에 비키니를 입고 가고
사귀는 첫날 진도를 이렇게 까지 빼다니? (외로운 여자는 참지안긔!)
이런 개방적인 여자는 처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그 모든 것은 마음 붙일 곳 없는 외로운 이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같고..
가정이라는 든든한 뿌리가 생기자
더 이상 몸부림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걸 '잡은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 심보'라고 말한다면 섭섭하다.
왜냐면 나는 잡은 물고기 잡지 않은 물고기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낚시를 끝낸 거다!
낚시 종료!!
미션 컴플리트!
넌 나의 대어야!
착하고 성실한 놈으로 잡았으니 흐뭇하고
예쁜 아이까지 생겼으니 내 무엇을 더 바라리?
근본적으로 나는 섹시하게 차려입고 어른들의 애정행각을 벌일 때
성적인 즐거움을 누렸다기보다는
무언가에 연결되고픈
깊은 결핍을 간신히 채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나는 성에 대해 "쾌"와 "불쾌"의 저울로 잰다면 "불쾌"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니다.
나도 애 낳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러니 남편이 사기결혼 운운할만하다.
남편은 아이가 잠들 무렵 초롱초롱한 눈으로 은밀한
메시지를 보내곤 했지만
나는 강력한 무표정(-_-)으로 철벽을 치거나
자는 척을 한적도 있음을 이실직고한다.
문제는 남편이 이럴 때마다
부인이
변했다며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상처를 받는 것이었
다.
아니야. 남편아!
난 너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협동하여 살아나가는 것이 참 좋아.
잘 봐
! 널 꼭 닮은 아이를 이렇게 겁나 열심히 키우고 있잖아!
밥도 차려주고 옷도 빨아주잖아?
아주 가끔이지만 청소(하는 흉내)도 내잖아!
이 모든 게 내 사랑의 증거야!
이런 말은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그 모든 것보다도 자신이 남자로서 나에게 얼마나 어필하는가를 사랑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남편이 유난히 너그럽고 기분이 좋아 보이던 날은 그런 쪽으로 부인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 날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날은 밥 좀 안 챙겨줘도 심부름 좀 시켜도 룰루랄라 기분 좋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런 음탕한 녀석!
이라고 말하려고 보니
똑같은 상황이 반대로 나에게 일어난다면 나도 많이 속상할 것 같았다.
남편이 나를 여자로 전혀 보지 않는다면?
그냥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든든한 팀원 정도로 생각한다면?
나도 내가 많이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나도 성을 기쁘게 누리고 싶다.
하지만 내 안의 성적 수치심은 켜켜이 많이도 쌓여있었다.
어린 시절 추행의 기억도 그렇고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신념도 그렇고
성인이 되어 만든 기억들조차 로맨틱이라기보다는 너무 위험하고 거친 것들이 많았다.
가끔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어 이불을 걷어찰 정도니까.
그 상처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더러워질 수 없어.
외로운 아이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뿐이야.
괜찮아.
다 괜찮아.
치유가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남편에게 치던 철벽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을 나눌 때의 기쁨이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편안함과 기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수치심과 짜릿함, 쾌감이 뒤범벅된 맛이었다고 한다면..
치유와 수용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좀 더 부드러운 로맨틱함에 가까워졌다고 할까.
가장 좋은 점은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나는 플라토닉 한 사랑을 추구한다며
돌연 밀어내 버렸던 남편에게 사과해야겠다.
당신은 남자로서 사랑받을 권리가 있었고
당신의 사랑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이다.
변한 건 나였지.
당신 참 오래 참았다고.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
written_by_leejieun
keyword
여자
부부관계
그림에세이
Brunch Book
밉지 않은 나
18
신이 나를 만들때
19
출산에 자매품 모성애가 없었다.
20
성욕 가출사건
21
엄마 실격
22
부처인 줄 알았는데 로봇이었어
밉지 않은 나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9화)
41
댓글
16
댓글
1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지은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푸름이교육연구소
직업
상담사
허들을 넘는 여자들
저자
순전히 노력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된 엄마. 그 우여곡절의 여정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구독자
498
제안하기
구독
이전 19화
출산에 자매품 모성애가 없었다.
엄마 실격
다음 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