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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에 자매품 모성애가 없었다.

나의 처절한 모성애 개발기

by 이지은

나는 아이를 낳으면 1+1 자매품처럼 모성애도 딸려오는 줄 알았다.

혹시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 손~~!


내가 생각한 모녀의 모습은 이랬다.

갓난아기를 번쩍 들어 올리며 미소 짓는 엄마.

아이는 까르르 웃고 있고,

햇살이 그 둘을 감싼다.

아! 이 둘은 분명 행복할 거야!


사실 현실의 내 모습은 깨발랄한 어린아이들을 피해 다니는 실정이었다.

세시방향 개구쟁이 출몰!

손에 비누방울건! 비누방울건!

무장한 녀석이다!!

전대원 좌측으로 피하라!


하지만 이런 나도 막연히 아이만 가지면 티비 광고에 나오는 엄마처럼 세상 따스한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며 꺄르르 꺌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뭔가.. 호.. 호르몬?.. 같은 걸 끼얹어서 말이지!


헌데 막상 임신을 하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어랏 왜 나 그대로지?

아직 배송이 안된 건가?


당시 좀비 게임을 개발 중이었던 나는 아기보다는 좀비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워킹데드로 태교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좀비이고 좀비가 나였다.

나는 내가 프로페셔널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태아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태담을 나누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일이 바빠서라기 보다는 태교를 하다가 내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질까 봐 그랬던 것 같다. 왠지 나는 임산부였지만 임산부처럼 지내기가 싫었다. 그냥 배만 나온 커리어우먼이고 싶었다. 쿨한 여성! 느낌 알잖아?


임신 후반기가 되자 태동이 느껴졌는데 나는 뭉클함보다는 외계인이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영화 "에일리언"을 떠올렸다. 기분이 좀 좋은날은 "잉어"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출산 후 만난 아이가 외계인만큼 낯설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재로 아이와 외계인의 닮은 점은 이렇다.

1. 외모 (그때의 내 눈에는 그랬다.)

2. 외계어를 사용한다는 점 (어우에워꿔꺄꾸웨으#$%#@#$@#$@$~~!!)

3. 음식을 얼굴에 바르거나 통목욕 중에 똥을 싸는 등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 (외계인이 어떻게 똥을 싸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10 달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전혀 친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육아도 철저한 준비와 공부로 성취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건강하고 명석하고 다정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외계인 양육 프로젝트!


짬 날 때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정주행 하면서 외계 생명체의 문제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삐뽀삐뽀 119 책을 읽으며 모든 두드러기를 공부했지만 [잠정적 문제덩어리]인 아이와 나 사이에는 사랑이 싹틀 틈이 없었다.


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에야 나는 프로젝트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육아는 프로젝트라기보다는 "관계"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난 관계에 엄청나게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며 바닥에서부터 조금씩 겨우 겨우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철저하게 노력으로 모성애를 배운 케이스다.


육아 강의를 듣고 책을 읽었다.

심리상담도 받았다.

억지로라도 애정표현을 하려고 입꼬리를 힘주어 올렸다.

물론 아이는 엄마의 썩소가 더 무섭다고는 했지만..


아이가 납치되거나 병드는 내용의 영화도 참 많이 봤다. 그런 영화를 보며 펑펑 울고 나면 그래도 며칠은 아이와 버틸 이 났다.

검색창에 모성애 영화로 검색해보면 몇몇 작품들이 나온다.

나처럼 모성애 부족형 엄마에게 강력 추천한다.

(매물이 얼마 없으니 아껴보도록.)


마른 걸래를 쥐어짜듯 사랑을 쥐어짰다.

짜내고 짜내니 뭔가가 나오긴 나오더라.

사랑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엉뚱한 것도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아이는 감정이 널뛰는 엄마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했다. 내가 자기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동안에도 나를 꼭 붙들고 "엄마 미안해" 라며 울었다.

마치 복날에 강아지처럼...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도 차츰 내 새끼에게 정이 가기 시작했다.

썩소가 아닌 미소 짓는 순간이 많아졌고

슬픈 영화도 차츰 덜 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되어 아이를 사랑해주지 못하는 것이 참 미안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이 아이를 만나지 않고 마음의 준비를 할 방법이 있었을까 싶다. 부대끼며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이 나를 엄마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는 마녀 같았던 엄마가 이제는 천사가 되었다고..


노력으로도 사랑이 가능하더라.

당신도 마녀 건, 마녀 후보생이건 포기하지 말기를!

모성애 제로였던 나도 사랑을 배웠다.


당신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에게는 영혼의 껌딱지인 아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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