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중학교 3학년을 채 마치지 못한 10월에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왔다. 한국과 미국의 다른 학제 시스템과 빠른 생일 탓에 느닷없이 미국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코로나로 초등학교 졸업식도 제대로 못하고, 엄마 때문에 중학교 졸업도 못하게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도 적응할 생각에 망막하지만 원재도 많이 망막했을 것 같다. 입시로 달려가야 할 한복판에 모든 것이 낯선 미국에 준비도 없이 갑자기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를 둔 경우에는, 주재원으로 부임하게 될 경우 단신 부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에서의 학업에 익숙해지고 막 입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모든 걸 버리고 새로 시작하기가 사춘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왜인지 아이를 두고 간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있지가 않았다. 안 그래도 아빠랑 떨어져 사는데, 엄마랑도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랑만 살 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을 구할 때는 아이가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는 곳만 알아보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라이드를 해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보니, 아이가 혼자서 통학할 수 있는 게 중요했다.
뭐 그렇게 학기 중간에 느닷없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올 것을 기대하는 건 너무 양심이 없는 일이었다. 울고 불며 학교를 안 가겠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 그러다 보니 첫 학기 성적표에 F 두 개를 받아왔다. English와 Biology. 그렇지, 한국어로도 어려운데 고등학교 영어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리 만무하고, 한국어로 배워도 어려울 생물에서 낙제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 성적표다.
그래도 좋은 건 마치 대학교에서의 계절학기처럼, Summer School을 통해 낙제한 과목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원재도 그래서 첫여름 방학 때 Summer School을 등록했다. 보아하니, Folsom 주변의 여러 고등학교 아이들을 한 고등학교에 모아서 학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관련 과목을 수강하게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Summer School을 여는 학교는 매 년 달라지는 것 같았는데 하필 올해는 원재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30km는 떨어진 학교에서 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한 후 내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출근하고 일하면서 어떻게 매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지.. 였다. 아이의 적응이나 학업 스트레스는 안중에도 없고, 아, 어떻게 데려다 주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라니.. 지금 생각하니 참 미안하다.
다행스럽게도 나 같은 걱정이 있는 사람이 많은 지, 며칠 후, 딸아이의 학교에서 Summer School이 열리는 학교까지 매일 왕복하는 스쿨버스를 운영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진짜 어찌나 감사하던지..
Summer School이 열리는 첫날, 원재와 함께 학교에 갔다. School Bus를 어디서 어떻게 타는 건지 안내가 제대로 없었던 지라 불안하기도 했고, 그래도 또 다른 시작인데 응원도 해주고 싶었다. 못하면 다시 하면 되고, 엄마가 늘 옆에서 응원해 줄 거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달까..
아이가 School Bus 기다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 왜인지 좀 울컥했다. School Bus를 타고 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마치 처음으로 내 품을 떠나는 아이를 지켜보듯 한참을 지켜보았다.
이 먼 타국에서 엄마가 도와주지도 못하고 있는데 혼자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딸아이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달까.. 그래서 원재에게 사진 찍은 걸 보내줬더니 답장이 왔다. 주접떨지 말라고..
감정에 푹 빠졌던 마음이 차갑게 식으며 그날은 하루종일 삐져서 집에 와서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