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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how are you?

by SingleOn

미국 와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Hi, how are you?”인 것 같다. 반복 주입식 교육으로 그 말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I’m fine thank you, and you?”는 남몰래 속으로만 머금으며, “Good, thank you.”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낸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 미국에 2년을 살면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어떤 영어를 배웠던 것인가..).


회사에 출근을 하든, 커피숍에 가든, 식료품 점에 가서 계산을 하든, 심지어 산책을 하다가 마주쳐도 항상 제일 먼저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냥 형식적인 인사말이라 나도 형식적으로 대답하면 되는 말들도 처음 와서는 너무 부담스럽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맨날 똑같이 대답해도 되는 걸까? 나도 되물어야 하나? 뭔가를 더 얹어서 물어봐야 하나 등등. 사소한 것들마저 고민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부분 없이 이런것마저 이렇게 고민을 하나 싶을 정도로..


근데 문득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그런 인사말을 할 기회가 없다는 걸. 편의점에 들어가서 계산을 해도 카드만 내밀면 되고, 회사에 출근해서도 인사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던 것 같다. 커피숍에 가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Tall사이즈요’라고만 말했지, 인사를 하지는 않았던 걸 새삼 인지하게 된 것이다. 아, 이게 경험이 없어서 어색한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게 되니 또 많은 것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가만 보니 이곳에서도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대답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나같이 그냥 인사 이후 대화가 끊기는 경우도 있지만 또 대다수의 경우는 그걸 바탕으로 Small talk가 시작되기도 한다. 날씨 얘기, 내가 왜 이 커피를 주문하는지, 오늘 왜 치즈를 3개나 사는지, 아들이 오래간만에 집에 놀러 온다는 등..


형식적인 인사가 Small talk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계산대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나는 ‘저러니까 일이 늦지, 빨리빨리 계산에 집중하란 말이야. 왜 저렇게 쓸데없이 자기 얘기를 하는 거야’ 싶어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잡담 없이 일처리에만 집중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근면성과 효율성이 느닷없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내 차례가 왔다. 점원이 묻는다. ‘Hi, how are you?” 내가 대답한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네, 집에 가서 쉬려고 맥주를 샀어”. 점원이 말한다. “긴 하루를 보냈구나, 맥주가 휴식에는 최고지. 네가 산 맥주는 나도 되게 좋아하는 거야. 이 맥주 전에도 마셔봤니? 네가 정말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너의 남은 나은 하루가 평안하길 바라. 좋은 저녁 보내렴.”


줄이 길어지고, 계산이 빨리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분명 살짝 짜증이 난 상태였었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사실 “(안 그래도 퇴근하고 집에 가느라 피곤한데, 네가 손님들이랑 수다를 떠느라 계산이 늦어지는 것 같아 더 피곤해졌어.) 피곤해서 집에 가서 맥주 마실 거야”라고 말한 거였는데 이리도 다정하고 친절한 멘트라니..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친절해진 것 같다. 상대방의 안부도 좀 더 진심으로 묻게 되고, 형식적인 인사말에 진심으로 대답하기도 한다. 내 생일에는 ‘오늘 나 생일이야, 축하해 줄래?’ 하며 축하를 강요하기도 한다. 호들갑스러운 그들의 축하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근데 또 그게 기분이 좋다. 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오지랖, 주책이라고 표현했을 법한 작은 친절과 호의 다정함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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