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운동권 대학생

by 이대희

2004년 여름.

그 해는 무척 뜨겁고, 고개가 숙여지는 여름으로 기억된다. 흔히 말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 작금의 특수교육 현실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누군가의 땀과 어떤 이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쟁취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장애학생의 질 높은 특수교육을 위해 예산을 확대 편성하고, 학급당 정원을 정하며, 특수교사를 더욱 확충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도경만 선생님은 단식 농성에 들어가고, 전국에서 장애인 교육 관련 학과나 단체장은 인권위를 점거하면서 투쟁의 수위를 높여갔다.


나는 당시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작은 대학생 단체장으로 인권위 점거 농성에 참여하였다. 당시 도경만 선생님은 단식 중이었고, 우리는 근처에 앉아 요구사항과 투쟁 방향, 그리고 내일 청와대 1인 시위 순서를 정하는 회의를 했다. 전북 지역에서 올라온 우리 단체에게 1인 시위 역할이 맡겨졌다. 나는 살짝 망설였다. 어린 나이에 짊어질 책임감과 역할이 너무도 컸기에.


그러나 앉아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점거한 인권위에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불러 꾸역꾸역 잤다.


아침,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1인 시위 준비에 들어갔다. 피켓과 신분증을 챙기고, 장애인교육권연대 팀의 안내를 받으며 도보로 청와대 앞으로 갔다.


가는 길에 사복 경찰이 신분증 확인을 하였다. 그리고는 무전기로

“2명, 청와대 이동 이상.”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청와대 앞 지정된 1인 시위 장소에 섰다. 둘러보니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분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품고 있는 울분을 이렇게 토해내고 있구나.


자리를 잡고 가만히 서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장애학생들의 더 나은 교육환경, 장애학생 학부모들의 염원, 교사들의 처우 개선… 이 모든 것들을 모아 지금 이 시간을 채운다.


1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곳 앞에 대형 버스가 멈췄다. 그러더니 문이 스윽 열리며 여러 사람이 우르르 쏟아졌다.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진찌땅장와 마르땅우둥화!”


무슨 소리지?

아, 중국 사람들이구나.


중국 관광객들이 청와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닌가.


가이드가 나를 가리키며 뭐라뭐라 한다. 중국인들은 감탄과 알 수 없는 고갯짓을 한다.


마지막 가이드의 말 한마디가 끝나자, 중국인 관광객은 내 뒤로 모였다. 가이드는

“이얼싼!” 하고 외치더니 찰칵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다.


나는 덩그러니 남아, 낯 뜨겁고 고개를 숙이게 만든 여름을 그렇게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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