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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22.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17

꽃밭 꾸미기와 잡초 뽑기

나는 꽃밭에 관심이 많고 아내는 텃밭에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꽃밭에 관심이 많은 까닭은 꽃의 원초적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텃밭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화단에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나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앞마당에 꽃밭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장날 괴산 읍내에 나가 꽃을 사려고 화원 나들이도 했지만 비싼 가격에 망설이다 그냥 나왔습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서오릉 화원이 가성비가 좋다고 합니다. 

“여보, 서오릉 화원에 가면, 작은 꽃은 이천 원에 살 수 있다고 하네요” 

서울 집에 갔을 때 서오릉 화원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수선화, 팬지, 데이지, 다일리아 등등 색깔별로 다양하게 여러 꽃을 샀습니다. 다이소에 가서 화분도 파스텔 빛깔로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다이소 화분은 가격도 착하지만, 형태도 다채로웠습니다.


 화분을 설치할 화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목공 시설과 기술이 없는 나로서는 주변의 버려진 물품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벽돌로 양 끝에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판을 올려놓았더니 그런대로 화단이 꾸며졌습니다. 데크에서 꽃밭을 바라보니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집니다.
 
 꽃밭을 꾸몄으니 이제 텃밭에 가서 일해야 합니다.
 오늘의 미션은 퇴비를 뿌리고 밭을 갈아엎는 작업입니다. 우리 집 옆에 커다란 고추밭이 있는데 트랙터로 밭을 가는 모습이 웅장했습니다. 트랙터로 고르게 갈아엎은 흙이 황톳빛으로 선연합니다. 진한 흙빛에서 땅의 기운이 넘쳐흐릅니다. 우리는 트랙터가 해야 할 일을 삼지창과 호미로 해야 합니다. 장난 아닙니다.


 4월의 이상 기온이 초여름처럼 작렬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옆의 고추밭 농사가 산업 혁명 이후의 농법이라면 우리 밭은 철기 시대 버전입니다. 헬스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밭일하고 나면 몸무게가 1kg 이상 빠집니다. 문제는 온몸이 쑤신다는 것입니다. 농사에 적합한 근육을 늘리고 요령도 알아야겠습니다.
 
 지인 화가가 만들어 준 현판을 데크에 걸었습니다. ‘라온제나’라는 글자를 그 비싼 자개로 꾸며주었죠. 전시회에 출품해도 좋을 만한 작품입니다. ‘라온제나’는 ‘즐거운 참나’라는 뜻이랍니다. ‘즐겁게 살자’는 내 삶의 모토입니다. 수업도 의미에만 집중하면, 제대로 의미 전달이 안 됩니다. 재미있게 하면서 살짝 의미를 얹어야 하지요. 사실 글을 쓸 때도 나는 이런 원칙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뭔가 가슴 속에 울림이 남아있는 글이 좋습니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주장이 강해지면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기 쉬운 법이지요.
 ‘라온제나’라는 당호처럼 괴산 집에서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름이 떨어져서 가득 채웠습니다. 기름값이 올라 40L에 48만 원을 훌쩍 넘네요. 학교 후배가 괴산이 추워서 겨울을 나는데 기름값이 장난 아니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기름보일러를 외출로 해 놓고 팰렛 난로를 이용해 지난 겨울을 버텼습니다. 이번에 기름을 가득 채워 호사를 부리려 했으나 P3라는 에러 문자가 뜹니다. P3라니, 해독 불가능한 메시지입니다. 보일러실에 가보니 연통이 꿀렁거리고 불완전 연소로 인해 냄새가 자욱합니다. 우리는 당장 무슨 일이라도 발생할 것 같아 보일러를 껐지요. 업체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노즐 이상이라고 하네요. 기사를 불러야 합니다. 다행이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으면, 내가 스스로 하다 사고를 저지를지 모르니까요.
 
 다음 날 어제 끝내지 못한 퇴비 작업을 했습니다. 그 일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깁니다. 삽으로 떠서 뿌리는 대신 퇴비 포대를 직접 들고 뿌리는 것이지요. 삼지창으로 흙을 뒤엎는 작업도 속도가 붙었습니다. 확실히 농사는 경험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를 자르는데, 어떤 기준으로 잘라야 하는지 난감했습니다. 가지치기의 경험이 전무합니다. 어떤 원칙이 있을 것 같은데 잘 몰라 그냥 큰 줄기만 남기고 무조건 쳐냈습니다. 보기에는 시원해 보이지만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아 불안했습니다. 올해 포도가 열리지 않으면 다 내 책임입니다. 사람은 늙을수록(老) 깊이 생각(考)해야 하는데 나는 나이를 먹어도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덜컥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점심때 문경 사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애써 꾸민 화사한 꽃밭을 자랑했더니 보기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뒤면 다 말라비틀어져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꽃은 꽃밭에 심어야 해. 화분에 심으면 생명력이 없어 시들고 말아. 일주일도 못 갈걸”

화분에는 선인장 같은 다육 식물을 키워야 하나 봅니다. 나는 친구가 가고 나서 키 큰 수선화만 빼고 화분에 있는 꽃들을 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수선화의 꽃말이 자존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분홍빛으로 예쁘게 피어나야 할 꽃잔디는 누런 갈색입니다. 아내는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죽은 생명 같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누런 꽃잔디를 뽑아버렸습니다. 그 아래 파릇한 녹색 잎들이 머리를 내밉니다. 여린 새싹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초는 제거해도 계속 눈에 띕니다. 그래서 누군가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나 봅니다. 어느 스님은 잡초도 생명이니 그냥 어울려 살게 내버려 둔다고 했는데 그 경지까지 가려면 좀 더 내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라는 잠언이 떠 오르지 않았다면 나는 잡초 작업을 하다 쓰러졌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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