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스텐 그리고 라커칠
오늘은 양산에서 작은 처형과 큰 처형이 오는 날입니다. 작은 처형은 겨울에 한 번 온 적이 있지만 큰 처형은 처음이지요. 아내는 제일 살가운 언니들하고 괴산 집에서 편하게 한잔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내는 언니들을 만나면 목소리 데시빌이 한껏 높아집니다.
손님을 맞이하지만, 오늘도 할 일이 많네요. 텃밭을 일구고 비닐을 씌우고 여러 가지 묘종을 심어야 합니다. 데크에 오일 스텐 작업도 해야 합니다. 벌써 한 낮의 햇살이 뜨거워 지붕에 차양막도 설치해야 합니다. 게다가 농기구 창고도 정리해야 하고...
지붕에 차양막을 설치하기 전에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붕에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집 사다리로는 어림도 없군요. 뭘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잡을 것이 없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뭐라도 잡고 싶은데 잡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농기구 창고도 정리하려고 하니깐 감이 안 잡힙니다. 지붕도 뜯어내고 새로 설치하고 싶은데, 그럼 업자를 불러야 합니다. 한 번 내가 해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능력도 안 되는데 만용을 부리고 있으니까 아내는 그냥 페인트나 칠하라고 합니다. 그냥 페인트나 칠하라는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전기보일러를 고치로 오신 기사분이 노즐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보일러 자체가 터졌다고 하네요. 보일러를 새로 사야 한다고 합니다. 보일러가 지저분해서 청소하려면 귀찮았는데 새로 구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분간 보일러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겠지요^^
양산에서 출발한 처형댁이 11시도 안 되어 도착했습니다. 일을 시작도 안 했는데 처형댁이 온 것이지요. 아내는 괴산 읍내에 가겠다고 언니에게 텃밭 좀 갈아달라고 부탁하네요. 사실 처형은 오늘 구원투수로 온 셈입니다. 야구도 아닌데 웬 구원투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처형은 동생이 결혼하고 육순이 되어도 늘 보살펴 주고 싶어 합니다. 농사일이 서툴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처형이 와서 구원투수를 해 준다면 승리 투수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괴산 읍내에 가서 묘종과 호미를 샀습니다. 집 단장을 위해 오일 스텐과 라카도 샀습니다. 할 일이 많아 술은 적당히 샀습니다. 낮술로 늘어져 버리면 오늘의 농사는 꽝이 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손위 동서는 군 출신인데 분위기는 한량입니다. 아무렴 반듯한 군인보다야 한량이 좋지요. 차양막을 설치하는데 지붕 위로 올라가는 것을 고민하는 내게 동서는 지붕 아래쪽에 설치하면 된다고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최 서방, 위험하게 지붕 위에 올라갈 필요가 뭐 있어. 여기다 설치하면 되겠구먼!”
손위 동서가 망치를 직접 들더니 못을 박기 시작했습니다. 동서는 한량 스타일로 별 고민 없이 뚝딱뚝딱 못 질을 몇 번 하더니 차양목을 완성했습니다.
나로서는 첫 번째 난관을 통과한 셈입니다.
자 이제 마당에 있는 야외용 테이블에 오일을 칠하는 작업을 할 차례입니다. 이건 나 혼자 도전해 보기로 했죠. 유튜브를 통해 학습해 두었거든요. 오일통을 따고 막대기로 휘젓습니다. 트레이에 오일을 적당히 붓고, 붓에 오일을 충분히 적신 다음, 이게 중요한데... 꾹 눌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얇게 여러 차례 덧칠할 수 있답니다. 나는 오일을 바르면서 사랑도 여러 차례 덧칠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오일 스텐 작업을 마치고 나서 테이블을 바라보니 반짝반짝 빛납니다. 혼자서 임무를 완수한 나로서는 그렇게 흐믓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도 오일을 발라주니 젊은 생기를 찾은 듯합니다. 나이 먹은 여인이 곱게 분을 바르고 나면 우아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농기구 창고 정리도 아내 몰래 혼자 했습니다. 물론 격렬하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서였죠.
라카질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라카를 적당한 힘으로 분사해야 합니다. 동시에 팔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여 주어야 하고요. 어느 순간 팔이 멈추면 그곳에는 얼룩이 집니다. 햇살이 온 세상 평등하게 뿌려지듯 라카도 평등하게 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순간 이동이라는 난이도 높은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데, 그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결점투성이지만 나로서는 자랑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자주색으로 곱게 칠해진 농기구 창고를 바라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와~ 창고가 새롭게 탄생한 거 같아요. 색깔이 넘 곱네요^^”
숫컷으로서 나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나는 아내의 칭찬에 힘입어 데크에 오일을 바르는 작업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통찰학습으로 깨달아가면서 한 것이었지요. 롤러를 세게 굴리다 오일이 튀어 입고 있던 옷을 버려야만 하는 사소한 사고는 발생했지만, 그게 뭐 대수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