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음
우리 부부가 귀촌을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텃밭 때문이랍니다. 주말이면 아는 지인의 집에 가서 텃밭 농사를 짓던 아내는 내가 은퇴하면 시골에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했지요. 아내를 따라 주말농장에 따라갔다가 별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로서는 귀촌을 하되 텃밭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답니다. 그러니까 전원주택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아내의 로망이었다면 전원주택에서 한량처럼 사는 것은 나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전원주택을 고를 때의 기준이 서로 달랐습니다. 아내는 텃밭이었고 나는 전망이었습니다. 그러다 괴산에서 적당한 텃밭과 멋진 전망이 있는 전원주택을 찾은 것이지요.
그런데 왜 그 많은 지역 중에서 괴산이냐고 묻는 분이 계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처음부터 괴산을 정해 놓은 건 아니었고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 쪽에서 알아보았지요. 그런데 양평은 이미 가격이 너무 높아 점차 한강 아래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답니다. 양평에서 시작해 여주 찍고 충주 거쳐 괴산까지 내려오게 되었는데요. 괴산은 강원도처럼 웅장하지 않고 그리 높지 않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 평화로워 보여서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무릉도원 같았습니다. 옛 정취를 간직한 고즈넉한 마을 풍경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우리나라 한가운데 위치해서 어디든 여행을 떠나기가 좋을 듯 싶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충동적으로 무작정 떠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괴산이라면 무작정 여행에 딱 맞아 보였습니다. 당일치기로 동해 바닷가도 가능하고 전라도 땅끝마을도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심심한데 어디라도 다녀올까 싶은 생각이 들면 괴산 지도를 펼치고 눈길 가는 대로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귀촌할 곳으로 이곳 괴산으로 정한 뜻밖의 소중한 이유는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음’이랍니다.
겨울 방학이지만 학교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사흘 서울에 머물다 괴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올 때마다 괴산에 가져가야 할 짐이 많아서였는지 그만 내 가방을 두고 왔습니다. 가방 안에는 노트북과 핸드폰 충전 케이블이 있었습니다. 노트북이야 없어도 되지만 핸드폰을 사용하려면 충전 케이블은 필요했습니다. 핸드폰이 없으면 세상과의 소통은 단절되는 것일까요? 며칠 핸드폰을 꺼 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학교에서의 급한 연락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케이블을 사러 괴산읍에 나갔습니다.
나는 이왕 읍내로 나온 김에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가까운 제월대 유원지를 찾았습니다.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한 셈이지요. 제월대 유원지를 미리 안 것은 아니고 지도에 가장 가깝게 나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맑은 밤하늘에 뜬 달이라는 제월의 뜻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찾은 달천강 이탄 유원지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데크 길을 따라 달천강으로 들어서니 이제 막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태양이 금빛 불꽃을 작렬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 44분을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풀린 달천강도 금빛 물결로 너울거립니다. 잔설이 남아있는 동산을 올라 고산정에 도착했습니다. 고산정 정자에서 바라보는 달천강 너머의 야트막한 산줄기도 산 그림자를 강물 위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산 그림자도 저녁이면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온다던 어느 시인의 시가 떠 올랐습니다. 산 위의 조각구름은 황혼에 꼬리를 물들인 채 솔개처럼 흘러갑니다. 덤부렁듬쑥한 겨울 고목 잔가지들이 찬바람에 나붓나붓 흔들리고 있는 달천강은 쓸쓸한 추억을 지닌 사람들이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천강을 끼고 도는 둘레길을 걷다 보면 노을빛에 그 쓸쓸함의 온도가 얼마간 따뜻해지겠지요.
우연히 들어선 제월길이 아름다웠듯이 빠져나가는 제월길도 아름다웠습니다. 가로수 길을 따라 벚꽃이 줄 맞추어 서 있습니다. 지금은 겨울 나목이지만 4월의 벚꽃이 펼치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상상하면서 벚꽃 피는 날 다시 오기로 다짐합니다. 우연히 들른 제월대의 노을빛을 품고 집으로 향하는데 이마가 따뜻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제월대에서 미선로 교동길로 이어지는 국도 길이 아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