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적인 사람들 중에 제일 용감한 편
배가 고프다. 배가 고파서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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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밤 12시가 넘었는데 제대로 된 한 끼를 안 먹었다. 폭우주의보 문자를 받고, 낮에 집에서 커피랑 티라미수를 시켜 먹은 후로 남은 커피만 홀짝홀짝 마시고 하루 종일 먹은 게 없다. 항상 이런 식이다. 삶의 생기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음식에서부터 바로 티가 난다. 먹는 행위에 취미가 없는 나는 허기가 지면 막막하다.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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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행위는 내게 불편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쾌락을 유예하는 게 익숙한 나는 당장의 포만감을 느끼는 데에 에너지를 투자할 이유를 못 느낀다. 극도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내게 디저트는 아름답고 낭만 있고 예쁘지만, 식사에서는 아름다움과 낭만을 느끼기 어렵다. 식사를 하고 나면 깔끔한 내 집이 더러워지기나 한다. 이런 내가 먹는 행위를 좋아하기는 어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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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배가 너무 고프니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냉동실을 열어, 엄마가 만들어주고 간 김치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엄마의 사랑과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새벽 한 시에 첫 끼니를 먹었다. 일회용 용기에 넣어준 덕에 설거지가 필요 없는 김치볶음밥을 만족스러워하며 '자기 돌봄, 자기 자비'에 대해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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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심의 삶을 살게 되면 감정, 관계, 식사는 뒷전이 된다. 어제 커리어에 굉장한 무력감을 느낀 내게 먹는 행위는 사치가 된다. 먹는 행위를 거르는 게 자기 처벌이라면, 자기 처벌이다.
피암시성이 높으면 죄책감도 쉽게 느낀다. 상대방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자동적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아주 작은 흠이라도 찾아 스스로를 비난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몇 번을 다짐해도 삶이 날 코너에 몰면 어김없다. 무력감, 죄책감, 자기 비난이 뒤엉킨 상태의 나는 식사를 챙기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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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pathological suicidal ideation. 오랜만에 찾아온 사고이다.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울 지경이다.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이 아닌 완전한 타인 때문에 내가 이런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혼란스러웠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날 상황은 내가 그리던 모습과는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를 blame 하였고, 머리로는 그 blame을 튕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권력구조 앞에 무력한 나는 그 와중에 나를 다시 돌아보았고, 그런 스스로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돌리고파 메일을 보내고,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등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돼 자존심을 굽히는 것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 와중에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의심했다는 게 견디기 어렵고, 너무 실망스러웠다.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영어시험 기한을 놓쳐 학업휴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또 다른 나의 실수는 내게 치명적이었다. 모든 게 버겁고, 그만두고 싶어졌다. 내가 뭘 위해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고 있나 회의감이 들었다.
죄책감은 자기 비난을 부르고, 자기 비난은 실망감을, 실망감은 무력감을, 무력감은 Non-pathological suicidal ideation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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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면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섬세하고, 불필요한 책임감, 공감능력이 높은 내가 버겁다. 비주류의 것에도 쉽게 이입하는 섬세함, 책임감, 공감능력은, 사실을 감정으로 오염시키고, 스스로를 붕괴하여, 나의 존엄성과 중심축을 저 아래서부터 완전히 흔들어 버린다.
붕괴된 스스로를 느끼는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해야 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고 믿는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 나는, 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자기 돌봄과 자기 자비를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식사를 거르지 않으며, 글쓰기를 하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부여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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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 자아성찰을 불편해하는지 알겠다. 자아성찰은 양날의 검처럼 자기 비난으로 향할 수 있고,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는 상황이 고통스러워 자아성찰을 피하고 싶을 수 있겠다.
나는 회피적인 사람들 중에서는 제일 용감한 편이라, 자아성찰을 하고 자기 비난까지는 한 다음에, 스스로와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