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빗자루

# 갈대 빗자루와 나, 그리고 친어미

by 희도

할아버지가 만든 갈대 빗자루는 잘 쓸었다.

부드럽게 쓸렸고 먼지는 잘 훔쳤다.

할아버지 솜씨 덕에 튼튼하고 견고했다. 시중에서 파는 나일론 빗자루보다 훨씬 잘 쓸었다.

때리기도 잘 때렸다. 갈대는 비가 되고 손잡이는 매가 되어 버릴 곳이 없었다.

나는 그 아일 미워했지만 아버지의 여인들은 사랑했다. 그리고 잘 다뤘다.

방을 쓸라고 만들어 준 빗자루는 제 몫을 다했다.

방도 잘 쓸고 때리기도 잘 때리는 착한 아이였다.

친어미는 그 아일 제일 잘 다뤘다. 친어미는 여러모로 능력자였다.

온몸에 멍이 들고 부러 뼈를 골라 때려 절뚝이게도 했고 팔을 한 동안 못 쓰게도 했다.

아무도 친어미이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반병신으로 다녀도 그냥 다쳤으려니 했다. 깁스 역시 심심하면 찾아오는 친구가 되었다.



갈대 빗자루는 늘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언제 저 아이가 움직일지 알아야 하니까. 저 아이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내 일과가 되어 있었다.

지금이다.

저 아이도 아는 것이다. 친어미에게 언제 제일 기쁨을 주는지.

이제 그 기쁨을 주는 일을 할 때라는 것을.

잎을 눕히고 잡기 좋게 자세를 잡는다.

그래야 절대 부러지지 않는 저 손잡이가 제 할 일을 더 잘한다는 것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몰고 오는 바람을 갈대 빗자루는 쓸고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머릿속이 하얘지고 구름이 가득 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갈대 빗자루를 거꾸로 잡고 매로 만드는 순간 온 세상은 새카매진다.

그 속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여자만 보인다. 이미 어미가 아님을 안다. 그래도 처음엔 빌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빌었다. 잘못했다고. 손바닥에서 열이 나도록 싹싹 빌었다.

나중엔 살려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새카만 세상은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친어미 또한 이미 살려 줄 생각이 없다.

빗자루는 신들린 듯했다.

친어미의 손에서 뒤로는 나풀나풀 깃털을 날리고 대와 연결시켜 놓은 나무는 패야 할 목적지를 향해 정확하게 내리 꽂히는 당골네 칼춤을 춘다.

아무리 여미고 보듬어도 칼이 스친 자리는 비명이 멈추질 않는다. 저번에 한 번 칼에 꽂힌 머리는 멍했다.

한 동안 혹도 가라앉질 않고 어지러운 것이 죽을 것 같았다. 바보가 된 듯싶었다. 그 생각이 이렇게 무서운 지금, 스친다. 그래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칼은 그 손가락을 향해서, 도망 다니면 도망 못 가게 종아리를 향해서 정확하게 내리 꽂혔다. 못 도망가게 잡고 살집 있는 엉덩이에 꽂으면 너무 아파서 손으로 가린다. 그러면 가렸다고 그 팔로 정확히 내리 꽂혔다. 죽을 만큼 아픈데도 비명은 삼켰다.

그 새카만 세상 속에서도 살고자 했다, 나는. 서글프게도.




손가락은 뛰어가다 넘어져서, 종아리의 실금은 미끄러지면서 다리가 꼬여서. 팔은 아이들과 놀다가 부러졌다고. 그렇게 깁스는 심심하면 날 찾아오는 또 다른 공포였다.

그렇게 넘어가지는 세상을 보면서 알았다. 세상은 날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세상은 친어미를 위해서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그 뒤로는 빌지 않았다.

빌어도 맞고 빌지 않아도 맞는다면 굳이 빌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것은 아버지의 바람을 쓸자고 휘두르는 빗자루가 내가 빈다고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린것이 오기만 창창해서, 지 애비 닮아 빌지도 않는다고 더 맞았다.

결국은 너도 그 집 씨라며 느그집 식구들이라면 징글 몸서리가 난다 했다.

세상은 참 서글펐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살려 달래도 때리고, 빌지 않아도 때렸다.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의 자식이어서 더 맞아야 하는, 세상은 늘 그녀 편이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몰고 오는 바람을 잘 쓸지 못했나 보다.

빗자루로는 못 쓸겠는지 두 손을 치켜들어 휘두른다. 그래도 치고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발차기로 차 낸다.

손바닥 장단에 무너지고 발꿈치 아래에 짓이겨지고 깨진다. 숨이 안 쉬어진다.

친어미는 말한다.

나가 뒤져버리라고. 너만 없어도 이렇게는 안 산다고.

그 말에 그날 밤 바람이 그쳤다. 나는 오랫동안 헐떡였다.




세월은 흘러도 빗자루는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나도 지켰다.

바뀌는 것은 아버지의 여인들이었다.

아버지의 여인들은 잘도 때렸다.

방을 쓸라고 만들어 준 빗자루는 늘 제 몫을 다했다. 빗자루는 오는 여인들마다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말한다.

"너 같은 혹을 키우자고 여기 있는 게 아니거든? 어이구 죽지도 않아요... 어휴!! 지겨워 죽겠네.

좀 사라져라, 응?"


토요일이라 시골에 갔다. 할아버진 허리에 줄을 차고앉아 열심히 갈대 빗자루를 만들고 계신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만에 적막하게 묻는다.

"할아버지 그 빗자루 안 만들면 안 돼?"

"왜에?"

"그냥"

"아가... 뭔 일 있냐?"

"아니 할아버지 힘들어 보여서."

꺼덕꺼덕 힘들어 지쳐 흔들거리는 할아버지 엄지발가락을 외면하는 허리에 연결된 줄은 자꾸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 줄 때문에 할아버지 엄지발가락은 자꾸 목을 맨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고개를 흔든다.

난 죽어야 하는 사람인가?

내가 죽어야 모두가 행복한데 내가 죽지 않고 살려고 버티니 모두에게 불행을 주나?

모가지를 다리 사이에 끼워 집어넣고 갈댓잎만 본다. 피기도 전에 잘려 소금물에 삶아져 늙지도 죽지도 않고 평생 그 모습으로 울다가는 너나 나나.

빤히 보시던 할아버지께선 그날 빗자루 만드는 것을 접으셨다.

"가자, 더덕 구워 놓았다."

손잡고 걸어가시며 다정하게 웃어주신다. 모처럼 웃는다.

오직 할아버지만이 내게 등불이었다.




다음 날 돌아가는 내 손에 빗자루는 없었다.

할아버진 완성된 것이 없다시며 그냥 가라고 했지만 눈빛이 아팠다.

버스를 태워 주시면서도 눈빛은 여전히 잡고 계셨다. 너를 어찌 보낼꼬.

버스 안에서 내내 울었다. 할아버지 가슴에 매질을 했지 싶어서. 할아버지를 울게 했지 싶어서. 할아버지까지 울리는 난 나쁜 아이인가 보다. 정말 없어져야 하는 아이인가 보다.

죽고 싶었다. 그만 죽고 싶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이 세상, 나도 죽고 싶었다.

죽으려 옥상 난간에 올라가 섰다.

내려다 보이는 세상의 울렁임이 어지러워 얼른 내려왔다. 무서웠다. 살겠다고 다시 기어 내려왔다. 죽겠다고 올라 가 놓고는 살겠다고 얼른 내려온 내가 웃겼다. 생각해보니 맞아 죽는 그 순간에도 바보 돼서 사는 건 무섭다고 머리는 피한 나였다. 죽을 용기도 없는 게 척은. 더 웃겼다.

옥상 벽에 기대어서 엉엉 울었다. 무서워서 죽지도 못하겠고 두려워서, 맞기 두려워서 내려가기도 싫었다. 미움만 난무하는 세상에 홀로 서서 날아드는 욕설과 방망이의 공포는 나를 죽이고 있었다. 그 두렵고 무서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암담해서 하늘을 보는데 사방에 벽이 쳐지고 있었다. 짙은 어둠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이 날 버리고 있다. 두 발을 모아 양 무릎 사이에 모가지를 깊게 넣고 끅끅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나 좀... 나 좀 죽여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음엔 아버지도 안 닮고 아버지 딸로도 태어나지 않을 테니 용서해 주세요. 할아버지도 아프지 않게 할아버지께도 가지 않을게요. 잘못했어요. 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나 좀 죽여주세요.



"... 아가... 아가... 내 새끼. 잘 되라고 보냈더니. 느 아비 밑에서, 도시에서 큰 사람 되라고 보낸 길이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구나. 가자 할애비랑 가자."

등을 따스하게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아니 울고 계셨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또 운다.

할아버지를 따라가면 할아버지한테까지 나의 불행이 전염이 될 것이다. 도리질을 한다. 할아버진 살아야지. 웃으면서. 행복하게. 나 같은 것 때문에 울지 말고 아프지 말고. 버티는 나를 달래시느라 애를 먹으셨다.

그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늦게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여인은 자정이 넘어도 없는 나를 못 찾자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연락을 넣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물으셨단다. 내 새끼한테 손댔냐고.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내 집에 발 들이지 말라고. 그리고 애비란 놈이 지 새끼가 어찌 사는지 죽는지 그렇게 관심이 없으면 애비 자리 때려치우라 하셨다 한다. 그리고 며칠 전 보내던 모습이 가슴에 얹혀 있던 할아버지는 주변 옥상부터 뒤졌다 했다. 설마 설마를 입으로 기도처럼 외우면서. 그렇게 날 찾아 두 말도 안 하시고 데리고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오셨다 한다. 그 푸르스름한 새벽길을 밟아 시골로 내려온 나는 연일 이틀을 앓았다고 했다. 이틀 만에 눈 한 번 떠서 물 한 모금 먹고 다시 이틀을 그렇게 죽은 듯 잤다고 했다.

나흘 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어지러웠다. 힘도 없었고 입도 탔다. 머리는 머엉했다.

옆에서 상할매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옷에 가려진 몸뚱이가 사라지는 멍, 이제 시작되는 멍들로 가득해서 가슴이 미어졌노라고. 말이라도 하제 어째 그리 입 다물고 살았냐고. 우시면서 전해주시는 할아버지 말씀에 조금씩 진정이 됐다. 명절에도 오지 말리 했으니 걱정 말라고. 이제 여기서는 아무도 너 때리는 사람 없다고. 넌 내 새끼라고. 덕분에 물 떠 오신 울 할매는 무슨 말도 못 하고 손만 가만히 잡는다. 할머니...

그 말이, 그 잡아주는 손이 힘이 되고 기쁨이 됐다. 날 지켜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그렇게 난 내 힘겨운 어린 시절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내게 희망이셨던 할아버지가 계심으로, 날 지켜주는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믿음으로. 시간은 걸렸지만 웃음을 되찾았고 그렇게 찢어지던 마음도 아프지 않았다. 평온해졌다. 그렇다고 온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화가 나 어찌 다스릴 수 없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비명을 지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스려 보려 해도 그것만은 고쳐지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거나 화가 났는데 방법이 없을 때는 비명을 지르면서 내 가슴을 친다. 그 갇힌 시간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나를 갉아먹는다. 내가, 지금도 아프다.




그런 이유였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 무서웠다.

이처럼 상처투성이인 내가 맑고 깨끗한 아이들 틈에 함께여도 괜찮은 것인지. 혹시 내 상처가 저 아이들에게도 물드는 것은 아닌지. 늘 나를 되돌아보고 채찍질한다.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기를 때도 난 매를 들지 않았다. 열 살까지만 약속해 놓은 사랑의 매를 들고 그 뒤로는 그 매마저 던져 버렸다. 내가 혹 친어미처럼 정신 놓은 당골네가 되어 아이를 잡을까 봐서,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서 무서웠다.

눈이 돌아가 정신없이 빗자루를 휘두르던 친어미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선명하다. 잊을까 봐 꿈속에서조차 나타나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선명해서 아직도 악몽에서 헤맨다. 이것이 나를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어렸을 적 듣기 싫었던 말, 아팠던 말들은 내 아이에게나 학생들에게도 쓰지 않는다. 상처를 받아 흔들리고 아플까 봐서. 나처럼 그 상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에게 될까 봐서. 이유 없는 매질과 욕설이 아이들을 그 시간 속에 가둬 놓을까 봐서. 상처받은 아이들은 그저 몸만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가는 척할 뿐이지 실은 계속 그 시간 속에 머물면서 갇혀있다. 그 갇힌 시간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아파하고 되새김질을 하고. 벌어지는 상처를 꾹꾹 누르면서 그냥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있는 것처럼. 그래서 아이들은 그때 그 갇힌 시간 속에서 헤맨다.

나도 헤맨다.




세월은 흘러도 어찌 그리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고 늘 제자리인지....

어릴 적 부모로부터 혹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는 폭언, 폭력이 얼마나 깊이 가는지 안다면 저리 쉽게 아이들을 부서뜨리지는 못 하리라.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아이들 폭행 사건.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 한다. 소식을 들은 그 자리가 어디건 간에 부지불식간에 찾아드는 그 아프던 살들의 고통이 떠올라 손이 떨리고 눈뜨기가 힘겹다.

그 아이들의 고통이 그냥 내게로 전달이 되어 와 나도 모르게 맞았던 자리를 주무른다.

그 아이들은 내게 살이 찢어지고 피가 고여서 멍드는 고통이 얼마나 힘겨운지, 뼈가 부러져 내 몸을 밀어내고 내가 아닌 나를 만드는 고통이 어떤지 너무 생생하게 되살려놔 숨도 쉴 수가 없다. 연일 떠들어대는 뉴스는 그냥 떠드는 뉴스 속 감정 없는 말들에 불과하지만 들을 때마다 울고 아프고 웅크려야 했던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소녀는 일어서질 못했다. 아팠다, 슬프다는 표현으로는 어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아프고도 아렸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아이들의 세상은 얼마나 캄캄했을까를 생각하면 다시금 악몽이 찾아와 힘겨운 밤을 보낸다. 그때 그 소녀가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어리디 어린아이들이야.

어른들은 잘 모른다. 그때 그 아이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생을 훑고 지나다니는지 손을 대는 어른들도, 여린 아이들도 아직은 모르리라.





내 학생들에게서 어릴 적 나를 볼 때가 있다.

도우려 애도 쓰고 쓰다듬으려 노력도 하지만 쉽지 않다. 이미 생겨버린 상처를 내가 돕는다고 아프지 않다면, 순식간에 씻은 듯이 괜찮아진다면 거짓인게지. 나마저도 지금도 아픈 것을.

맞고 자란 나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불편했으며 눈치를 보고 자꾸만 숨었다. 사람을 쳐다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소리만 커져도 불안해했고 헐떡였다. 숨을 온전히 쉬지 못했다. 아팠던 기억이 맞았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뫄 나를 옭아맸다. 지나가던 개들이 나를 향해 크게 짖기만 해도 풀썩 주저앉아 울어 버리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난 예쁨을 받고 싶던 소녀에 불과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나가 죽어버리길 바라는 게 아니라 사라져 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그냥 보통의 자식들처럼.

그렇게 예쁨 받길 바랐을 뿐이었는데 돌아온 것은 매질과 욕설이었다. 내가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 그 작은 소망이 부서지면서일 게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크고 높고 넓은 소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부모로부터 사랑받길 바랐을 뿐이다. 그 평범한 소망이 거부당했을 때의 아픔은 쉬 가시지 않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돌아와 평온해진다는 것은 나를 위해 사랑을 주고 노력해 주는 사람들과, 나의 부단한 노력과 정성을 더해 마음을 잡아야 찾아오는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안에서부터 썩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겉에만 슬쩍 꿰매 놓는다고 해서 그 상처가 아물지는 않는다. 다시 곪아 터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더욱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나를 지킨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 믿음으로 도려내고 꿰매고 새살이 차 오르도록 나 스스로 노력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을 밑거름 삼아. 그래도 흉터는 남지만.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는 내게 커다란 숲이었다. 그 숲에는 할아버지라는 커다란 버팀목이 계셨다.

늘 내 편이었으며 늘 나의 지킴이었다. 나를 위해 온전한 사랑을 주셨으며 그 사랑을 온전히 내가 느낄 수 있도록 지켜주셨다. 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애정과 인내를 쏟아 주셨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 주시는 나만의 길이었다. 내가 믿고 걸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안전한 숲길이었다.

내게 할아버지라는 내 시간을 지켜주시는 숲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라는 한 주체가 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는 그 숲에서 숨을 쉬고 잠을 잤으며 성장해 갈 수 있었다.

이 세상엔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을 뒤엎어 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내가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고 내가 있어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일이 꼭 있을 거라고, 내가 세상에 필요하니까 보내셨을 거라 하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힘이 되어 주고 있다.

바다 위 길잡이 등대처럼 내게 등대가 되어 밝혀 주고 있다.

내게 할아버지가 계셨던 것처럼 이제 그 길잡이를 내가 해 주겠다, 놓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이 직업을 아이들과 함께 손을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빛을 비춰주면서 함께 걷고 있다.

내가 너희들과 항상 함께하는 등대이고 싶다고. 그러니 길을 잃지 말라고. 지금 너희들이 보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달아나지 말라고. 그 보이는 세상이 살아가는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

힘들거나 지칠 때, 그저 말 친구가 필요할 때, 울고 싶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내게 오라고. 내가 돕겠노라고. 내가 큰 힘은 되어 주지 못할지라도 꼭 옆에 있어 주겠노라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돕겠노라고.

너희들과 함께 사랑하겠노라고.

그렇게 지켜오고 있는 세월이 내게도 소중한 약을 처방해 준다. 그 아이들이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도 함을 깨닫는다. 옆에서 말 한마디 도움 한 조각만 건네주어도 아이들에겐 그 작은 말 한마디가, 도움 한 조각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 작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자 난 오늘도 내가 나를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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