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우고 싶은 날

by 희도


비 오는 날

무한정 게을러지고 싶을 때 있잖아

하늘인지 회색 구름인지도 모를 아래서

멍청하게 소리를 듣고 싶을 때 있잖아

무한정 사랑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오늘처럼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갑자기 찾아올 때

그저 손님의 손을 잡고 수다나 떨면 그만인 날

삶이 쉽진 않잖아

멀리 와버린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눈물이 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날이 왜 있잖아

짙은 생각도 깊은 고뇌도 지우고

느긋하게

떨어지는 빗소리에 마음을 두고

함께 도는 바람에 옆자리를 권해 차 한잔하고 싶은 날

설령 비에 젖어 서늘한 냉기를 풍긴대도

다정히 웃어주면 그뿐이잖아

사람이 사람의 일을 다 안다면

잘 숨겨진 상처투성이 진실을 안고 사는 것과 같잖아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백지 한 장의 앞도 못 보는 것이 사람의 일인 것을

빗소리를 듣는 지금이 소중하면 그뿐이잖아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에 미소를 지으면 그만이잖아

무한정 깊어져 수다를 떨며

잠깐의 오늘을 잊어 볼 수 있는 그런 날 있잖아

빗소리에 몸을 맡기고 바람에 마음을 주어

무한정 사랑을 나누며 게으름피우고 싶은 날

그런 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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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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