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
생후 40일째 내게로 온 첫날 밤
순하디 순한게 정말 이렇게 예쁜 애가 또 있을까 하고 이렇게도 쳐다보고 저렇게도 쳐다봤다.
싫다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내 눈을 계속 맞춰 주었다
뒤에 자는 척 있는 이쁜이, 보이시나용?
14년 전에 나는 순종 말티즈를 두 마리 입양했다.
어렵사리 건너 건너 알아봐서 입양했다.
딸아이 혼자 크느라 외롭다고 난리여서 늦게라도 함께 해 줄 친구이자 동생 같은 존재로 입양을 결정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와 잘 어우러지고 순한 견종이었음 했고 학부모님들의 알음알음으로 입양을 할 수 있었다.
이쁘고 순했다. 무엇보다... 작았다.
어릴 적 진돗개나 믹스견 또는 똥개만 보고 자란 나는 그렇게 작은 강아지는 처음이었다.
하다못해 만화에서 나온 플란다즈에서 산다는 개도 대형견이었다. 내가 가진 상식선에서 개는 다 그만한 크기였다. 그런데 앞에 있는 강아지는 너무 앙증맞고 작은 것들이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러져 버릴 것 같았다.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 마음에 이름을 천사의 꿈이라고 지었다.
몽
엔젤
"우하하. 천재지 않냐? 딱 어울리지? 엄마의 작명솜씨 기가 막히지 않냐? 완전 이뿌고 잘 어울려. 천사 같고 꿈같어. 이뻐 이뻐."
이 말은 평생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말이 됐다.
진도후손견이라고 유전적으로 보전돼 오고 있는 강아지들이라고 블라블라 긴 설명을 듣고 데리고 오는데 3시간이 넘도록 짹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상자 속에서 순하게 자고 일어나 콩닥콩닥 놀고 또 자고 했다. 물 사서 먹이면 달게 먹고 또 자고.
진짜 진돗개라 그른가? 낑낑거릴까 걱정 많이 했는데 쩝 나보다 낫네.
왜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 예서 떠오르는 거지? 기분...
그렇게 내려와서 하룻밤을 어찌어찌 보내고 보니 딸아이가 아빠랑 애기들 본다고 왔다.
즈 엄마 피곤한 건 생각 안 하나. 강아지가 우선순위야 뭬야?
아니란다 엄마도 어떤가 볼 겸 겸사겸사 왔다는데 엎드려 절 받기고 눈은 이미 애들에게 가 있고, 손은 벌써 안아 들고, 입술은 벌어져 찢어진다. 웃음이 귀에 걸렸다.
ㅉㅉ 보이는 게 다라니까.
"애기야~~ 애기야."
하며 안고 토닥토닥거리더니 이름이 없네 이름을 지어야지 한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얼른 나를 보더니 엄마는 엄마는 어떤 이름으로 지을 거야? 묻는다. 보이는 게 다라니까.
이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게 보이는구먼 또 보이기식 말을 꺼내기는.
"애기야~~ 아빠야. 아빠 기억해야지."
"아빠 아니야. 내가 무슨 아빠야."
"헉. 그럼 아저씨~~ 이 해야겠다. 아저찌~이. 해."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 둘은 이 씨가 분명하며 부녀지간이 확실하다.
"강아지는 부르기 쉽고 귀에 익기 쉬운 이름이 좋다고 했다. 철수야~~ 영희야~~ 이렇게. 그러니 진순이나 진돌이. 아니면 순심이나 순돌이. 좀... 촌스럽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면서 얼른 말을 돌렸다. 지랄 떨라.
"그럼 독구, 메리, 쫑 요렇게 지을까?"
"엄마!!!"
"깜딱이야. 귀먹겠다. 뭐 옛날엔 다 그렇게 지었어. 좋네. 독구, 메리, 쫑 하하하하하.
엄마 어릴 적 강아지 이름도 메리였잖아. 무려 3대를 내가 키웠다."
"그게 벅, 메리, 존이라는 미국이름을 일본인들이 발음을 못해서 얼버무리듯이 일본식 발음을 했고 한국 사람들, 즉 어른들이 그 이름들이 신기했는지 신식 개 이름으로 쓴 것이 버꾸 메리 쫑이 된 거예요. 그건 더 아니지 싶은데...."
아는 척은. 꼭 저랬다. 누가 국어선생님 아니랄까 봐 아는 척은. 멕이는 것도 아니고. 쯔
"그런 거 모르겠고. 일단 부르기 쉽고 입에 착착 달라붙음 된 거임. 끝. 쉬운 이름으로 하자고. 그리고.... 당신들은 자격이 없지 않아? 왜 나보다 나서서 난리지, 시방?"
"에이, 엄마 왜 그래~~. 알았어. 그럼 우리 몽이로 할까?"
순간 가슴 저 언저리 어디선가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갔다. 소리 없이 아팠다. 아직도 아프구나.
"싫어. 다시는 그런 이름 짓지 않을 거야. 괜히 천사니 꿈이니 했다가 진짜로 꿈이 돼버렸잖아. 이젠 그런 거창하게 멋들린 이름 말고 진짜로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할 거야.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마. 어렵게 결정한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알아. 나도 놀랐어. 난 다시는 엄마가 개 안기를 줄 알았거든. 데리고 왔다길래 많이 놀랐어. 어떻게 다시 기를 생각을 했을까 하고. 마음이 좀 나아졌나 싶기도 하고. 겸사겸사 온 거야."
"우린 아무 말도 안 할게. 근데 엄마~~~ 내 사주에 목자가 없대. 그러니까 나무 목자를 넣어서 짓자."
헐. 얘는 무슨 이십 대 초반인애가 사십 대 초반처럼 사주를 들먹이냐고.
내가 어쩌다 저런 딸을 낳았지?
나는 사주도 안 보고 제왕절개를 한다고 엄마가 좀 정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 팔자 지가 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고 제 달을 못 채우고 낳을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만난 것도 지 팔자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지 사주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날 수술한 사람들은 전부 사주를 보고 날짜와 시간을 맞춘 사람들이었다.
몇 시 몇 분에 꺼내주세요까지 요구한 집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동물 바라보듯 바라봤고 그날부터 나는 계모였다. 평생 네 엄마 계모니? 하는 질문을 내 딸아이는 들으면서 자랐다. ㅋㅋㅋㅋㅋㅋ
살가운 엄마가 아니면 계모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딸은 저렇게 사주를 걱정하고 살피고, 집안의 기운이 좋니 안 좋니 지랄이고, 꿈이 어쩌고 저쩌고 난리다. 내가 태교를 잘못한 게야.
진실로 진실로 잘못했다.